쇳물제조기술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은 포스코

쇳물제조기술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은 포스코

  • 철강
  • 승인 2009.07.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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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방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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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전문>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1960년대 후반, 경제자립 기반을 마련코자 일관 제철소 건립을 구상할 당시 우리나라에는 철강전문가는 물론 고로(용광로) 를 구경한 사람조차 드물었다.


외국의 설비와 기술을 이전 받아 제철소를 건설하고 가동한지 36년 포스코가 세계 제철 기술사에 큰 획을 그었다. 자체기술로 내용적 5,500㎥ 규모의 초대형 고로를 개수하고 쇳물 생산량은 세계 최대 규모인 일일 1만 4,000톤 이상을 기록하기에 이르른 것. 이에 따라 광양 4고로는 연간 생산량이 단일 고로로 세계 최초로 500만톤이 된다. 연간 생산량 500만톤은 국내 자동차 산업이 1년 동안 소비하는 전체 철강재 총량과 같다. 광양4고로 1기면 한국 자동차 산업이 1년간 필요로 하는 철강재 전체를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용적 5,500㎥은 일본의 오이타(5,775㎥), 러시아 세베스탈 (5,580㎥), 일본 기미츠(5,555㎥), 독일 슈벨게른(5,513㎥)에 이어 5번째지만 내용적 대비 쇳물생산비를 나타내는 출선비를 감안하면 세계 최대 규모로 평가 받는다. 현재 외국 유수 철강사들의 출선비는 2.1~2.2t/d.㎥인데 비해 포스코는 2.6 t/ d.㎥이상이다.



△ 첫 설비 도입부터 철저한 성능 확보에 총력


포스코는 1968년 회사를 설립한 후 1970~71년 설비구매계약을 본격화 했다.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일본에서 주로 구매하기로 돼 있어 환차손 같은 문제 없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제선공장 설비구매는 우리 측의 설비 성능보장 조항 삽입 주장과 운송조건 때문에 난항을 겪었다.


설비제작사인 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은 고로건설시 성능보장을 위한 조항을 문건화한 적이 없고 턴키 방식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측의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맞섰다. 그러나 포스코도 성능보장문제를 집요하게 요구하여 주장을 관철함 으로써 제선공장 설비계약을 착공 하루전인 1971년 3월 31일 간신히 체결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로 첫출선은 고로 화입후 21시간만인 6월9일 오전 7시 30분에 이루어졌다. 비록 외국 설비에다 외국 기술로 이룩한 것 이지만 초기 철강인들의 강력한 의지와 열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포항 1기에서 4기에 이르기까지 설비공급과 기술협력을 제공해 온 일본 철강업계는 1981년 포스코가 광양제철소 건설계획을 발표하고 그해 10월 양국 철강 교역 사상 처음으로 물량측면에서 한국의 추월로 역전되자 1981년을 ‘부메랑원년’이라고 명명하는 등 한국에 대한 견제심리가 극에 달해 광양제철소 건설에 대한 기술협력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포스코는 유럽으로부터 설비를 도입키로 하고 당시 박태준 회장이 유럽을 직접 방문해 설비공급사들에게 협력 요청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다. 그러자 일본 설비공급사들은 기술협력에 반대했던 일본 철강사들의 결정에 크게 반발했고 나중에 일본 설비공급사도 설비 공급에 참여해 유럽과 일본이 경쟁입찰함으로써 포스코는 최신예 설비를 경제적이고 유리한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광양 1고로는 포항1고로 설비를 공급했던 일본의 이시카와지마하리마중공업보다 20% 싼 가격을 제시한 영국의 데이비매키의 설비를 도입했다.



△ 산학연 협동으로 선진기술 독자개발에 성공


포스코는 1970년대에 다른 기업들이 널리 사용하던 기술을 습득하는 모방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으나 우리나라 최초의 고로이자 내용적 1,660㎥의 소형고로인 포항 1고로의 조업 성공을 통해 중대형 고로를 대비한 조업기술을 체계화했다.


이후 포항제철소 1기 규모와 동일한 2기를 건설하고 1976년 3기부터는 1,2기의 2배에 달하는 3,795㎥ 규모로 건설함으로써 고로 대형화 행진을 본격화했다. 포항 3고로는 고로의 대형화고압화에 따른 포스코 최초의 대형고로로 소형고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기술을 경험함으로써 조업기술 을 한단계 향상시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선진국들이 기술이전을 기피하며 선진기술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빠른 추종자의 자세를 견지했다. 포스코는 포항산업 과학연구원-포스텍을 잇는 산학연 협동으로 선진기술을 회사에 적합한 형태로 적용하여 완성하거나 외국으로 부터 공식적인 기술 도입 없이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했다.


이에 따라 1993년 포항 1고로 2차 개수 시에는 설비계획 수립부터 설계, 시공까지 자체 기술로 완료함으로써 고로개수 기술의 자립기반을 구축했다. 특히 소결광과 코크스 등 주요 원료들을 고로에 고르게 장입할 수 있도록 노정장입장치를 개선하고, 분말형태의 유연탄을 넣을 수 있는 미분탄 취입설비를 갖춤으로써 고로 본체의 내용적을 확대하지 않고도 일일 출선량을 2,920톤에서 3,250톤으로 늘렸다. 또한 고급연와를 사용함으로써 고로의 기대수명을 15년으로 연장시켰다.


1976년 포항 2고로에 최초로 컴퓨터를 도입한 이래 고로 내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관련자료들을 지수화하고 노벽 손상과 노하부 불활성화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장치도 전산화했다.

 
△ 제선 조업부문 세계 최고기록 양산


포항 1고로를 가동한 1973년 고로 출선비는 1.4t/d.㎥에 불과했다. 그후 고로 조업기술, 연원료 품질관리기술, 설비관리 기술 등 제선기술 전반에 걸친 기술력 향상으로 79년 포항 3고로 출선비가 2.0 t/d.㎥을 넘어섰다. 이후 단계적으로 개수하면서 출선비가 높아져 2003년에는 포항제철소 고로 전체 출선비가 2.23 t/d.㎥으로 향상됐다. 이로써 포스코는 2000년 초부터 제선조업분야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조업기술력과 원가경쟁력을 인정받게 됐다.


이후에도 고로 개수시마다 출선비가 향상돼 05년 광양 2고로가 개수 되면서 2.26 t/d.㎥으로 향상됐으며, 07년 개수한 광양제철소 3고로는 일일 출선량이 1만 4,809톤에 달하면서 월평균 출선비가 2.6 t/d.㎥으로 높아져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고로 내용적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포항1고로가 1,660㎥이었던 데 비해 포항 3고로는 3,795㎥으로 늘었고, 광양 5고로는 3,950㎥로 늘어났다. 광양 3고로를 개수하면서 4,600㎥로 늘었고 드디어 광양 4고로가 개수 되면서 국내에도 5,500㎥의 초대형 고로시대를 열게 됐다.


고로수명도 고로조업기술을 나타내는 중요 지표인데 포항 1고로의 경우 6.2년만에 개수하게 되었으나 광양 1고로는 15년, 최근 광양 3고로는 17년만에 개수했다.

*포스코 고로 수명 추이

고 로

포항1고로

1대기

포항4고로

1대기

광양1고로

1대기

광양2고로

1대기

광양3고로

1대기

준공시기

‘73년

‘81년

‘87년

‘88년

‘90년

수명(단위:년)

6.2년

13.2년

14.9년

16.6년

16.8년

 

*고로 출선비 추이

 

포항1고로

포항3고로

광양1고로

광양2고로

광양3고로

준공시기

73년

79년

02년

05년

‘07년

출선비(단위: t/d.㎥)

1.4

2.0

2.17

2.2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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