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상식을 뒤엎었던 기이한 현상들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는 걸 보니 올 한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10년 한 해 동안 열연 유통시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 돌이켜보니 유독 기이한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2008년 '호황', 2009년 '불황'이라고 거칠게 표현한다면 2010년은 한 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기자는 '기이한 시황'의 준말로 '기황(奇況)'을 붙여본다.
①"사장이 미쳤어요" - 공장도가보다 낮은 유통가
재래식 시장이나 전철역 부근 등 사람이 모인 곳에 종종 '사장이 미쳤어요''눈물의 대처분'이라는 말로 저가 판매를 강조하는 상점을 볼 수 있다. 흔히 속옷 상점, 휴대폰 판매점 등이 이런 광고 문구로 소비자를 자극한다. 올해 하반기부터 철강 업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 열연 스틸서비스센터(SSC)들은 열연 생산업체인 포스코, 현대제철, 동부제철의 공장도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 물량을 판매했던 것이다.
당시 열연 유통업계에서는 "7월 열연강판의 공장도가격 추가인상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현재 열연 유통가격은 톤당 100만원 이상 가야한다"며 가격 정상화에 안간힘을 썼지만 인상은커녕 톤당 90만원의 원가 판매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후 열연강파 유통가격은 '날개없는 추락'을 하기 시작해 결국 최근에는 톤당 80만원 수준까지 내려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열연SSC들은 제조사로부터 물량 할인 등의 혜택으로 공장도가 90만원보다는 낮은 수준에 물량을 구입한다. 그러나 할인 폭보다 유통가격이 워낙 저가에 형성돼있기 때문에 적자 판매를 만회하기에는 턱없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이에 따라 지난 3분기 영업 실적 발표를 한 주요 열연SSC들은 열연강판 판매에서 모두 적자를 면치 못했다. 타업체보다 영업이익률이 나았던 곳들도 실상은 판매 외 사업을 통해 수익을 거뒀던 것으로 나타났다.
장사꾼들의 속보이는 거짓말 중 하나가 "이렇게 팔면 남는 거 없어요"라고 한다. 이윤 남지 않는 장사는 접는 게 맞다. 그러나 올 하반기 열연SSC들의 속은 "접는 게 차라리 낫겠다"라면 얼마나 시장이 뒤숭숭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②"못 해먹겠다, 나가서 차리자" -2,3차 유통업체 증가
장사가 안되면 경쟁업체들의 수는 줄어든다. 이는 경제학의 기본이다. 경제학을 몰라도 당연히 앞이 뻔히 보이는 불구덩이에 뛰어들 사람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불황기에 레드오션에 뛰어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열연 유통업계는 반대의 모습을 나타냈다. 시황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2,3차 유통업체들의 수는 늘어났던 것. 열연SSC 등 판매 대리점을 나왔던 영업 직원들이 업무 압박 등을 이기지 못하고 '차라리 내 사업을 차리겠다'며 2,3차 유통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열연SSC에서 나와 철강 유통업에 종사하는 한 사장은 "철강 유통업이 사실 자금력이 크게 필요가 없고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크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호황기보다 불황기가 사업을 시작하는 데 더 손쉽다는 점도 이러한 현상의 근거를 뒷받침한다. 호황기에는 열연 생산업체 등으로부터 물량을 받기 어렵지만, 불경기에는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의 인력 유출이 잦은 것은 시황에 관계없이 일어나지만 올해에는 수요 부진 및 경기 악화로 과부하에 걸린 영업맨들이 극도로 피로한 시기였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