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특집) 뜨거운 삶의 한가운데(마지막 회) - 철강인 송원(松園) 장상태 회장

(추모 특집) 뜨거운 삶의 한가운데(마지막 회) - 철강인 송원(松園) 장상태 회장

  • 철강
  • 승인 2020.04.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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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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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동반자요 행복이었던 친구
 

“송원 형은 풍채가 당당하고 기개가 대단하면서도 업무처리와 대인관계에는 능소능대하게 원만했습니다. 세상에 사람은 많아도 인걸을 드문 법인데, 돌이켜보면 형과 같은 인걸과 만나서 필생의 동지로 친교 한 것이 내 인생의 행운이요 행복이었습니다.”
-박태준(전 포스코 회장/국무총리)
 
 “그 당당한 체구에 경륜과 열정을 고루 갖춘 남자다운 분이 왜 그토록 일찍 떠나셨는지, 여전히 안타깝고 그리움이 큽니다. 별세하실 때 73세였으니 탁월한 경륜을 바탕으로 더욱 의욕적으로 일하실 연세인데, 너무 과로하시다가 빨리 돌아가셨다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추경석(전 국세청장/건설교통부장관)

■ 앞서가는 인재 육성의 열정
장상태는 평소 동국제강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인재를 키우는 데 과감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었다. 1950년대 가난한 상황에서 농림부가 미국 유학을 시키는 사례를 이용해 그 자신이 학구적인 열의를 충족했다. 미국에서 2년간의 대학원 과정 공부는 평생을 두고 좋은 경험이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이해건이라는 젊은 직원의 유학을 지원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이해건은 워싱턴대학에서 4년간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동국제강에 복귀해 부산제강소 제강부장으로 근무했다. 이것은 새롭게 얻은 지식을 현장에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유익했다. 또한 공부할 기회를 준 회사와 장상태 회장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훗날 장상태의 허락 아래 교수의 길로 가게 됐고 포스텍에서 철강대학원장까지 역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좁게는 동국제강을 염두에 뒀지만 넓게는 한국의 철강산업, 더 나아가 세계 철강산업 발전을 위한 소신에서 나온 인재 육성의 모범 사례이다.
 
■ 경영 9단의 철학적 고독
그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후판과 형강공장 건설 회의가 끝난 이후였다. 모두 회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임원들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참 후 그가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저번 회의 때 내가 쇼크를 받은 기라. 내가 없으면 회사가 관리도 안 하고 도무지 회의도 안 하는 기라. 너무 실망 했던 기라. 내가 너무 편하게 살려고 했던 기라. 내가 너무 나태 했던 기라.” 하며 모든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다. 마치 학생들이 말을 안 들어서 스승이 자신을 매질하는 장면이 연상되어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에게는 ‘경영 9단’이라는 말이 별명처럼 붙어 다녔다. 소위 3김에게 당대 언론이 ‘정치 9단’이라는 경칭을 만들어준 이래 재계의 두서넛에 경영 9단이라는 말이 붙었다. 

그도 그 경칭을 받았던 거목이었다. 포항제강소 건설 시기에는 그가 어디에 있던 위기의식을 느끼며 고뇌의 나날을 보냈음을 위의 사례에서 느낄 수 있다.  
 
■ 철인(鐵人)과 철인(哲人)
장상태는 세심하고 성실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카리스마는 위압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았다. 전직 한 CEO는 “장 회장님은 얼굴이 호랑이상이어서 더러 부하 직원들이 두려운 마음을 품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유머러스하고 부드러운 면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와이즈맨’으로 평가 받았다. 장세주 회장이 선친이 작고한  뒤인 2006년 11월 브라질 철강협회 총회에서 철강 왕으로 불리는 락시미 미탈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장상태 회장을 기억하며 “진정한 와이즈 맨”이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장세주 회장은 큰 감동이었다. 선대 회장이 세계무대에서 지혜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가슴 뿌듯했다.

그는 연로해서도 스키를 배우는 등 새로운 일에 도전했고, 가정에서는 큰 손자에게 신문을 통해 세상사는 지혜를 알려주기도 했다. 큰 손자 선익은 “할아버지는 일흔이 넘으셨는데도 컴퓨터를 배우고 이메일을 이용하셨어요.”라고 했다.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여느 노인과 다르게 의욕적이고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모습으로 각인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후대에 남겨주고 싶은 소중한 유산이었을지 모른다.  
 
■ 고뇌하는 멘토 도전하는 경영자
“동국제강을 30년을 다닌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회사 좋은 회사니까 너도 들어가라’고 말하는 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동국제강이 좋은 회사다’ 하는 말이 제대로 전해지고, 전통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995년 7월 부산제강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가 한 말이다. 경영자로서의 꿈이 이처럼 잘 집약된 경우는 많지 않다. 이 말은 동국제강에 대한 사랑과 자랑이 함축돼 있고, 임직원들에게는 꿈과 비전을 주는 말이다. 

그가 한 말 중에 장세주 회장이 무릎을 치고 받아들인 말이 있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곡식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밭 임자의 발자국 소리다.” 긴 주석이 없는 표현이었다. 적당한 시간을 놓치지 않고 밭을 살펴보는 농민의 정성과 지혜는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마음과도 같은 것이다. 이 진리는 농사에만이 아니라 인간 만사에서 통하는 것이다. 그가 경영하고 수많은 사람을 통솔하면서 얻은 지혜와 경험이 하나로 담긴 명언 증 명언이다. 

그는 도전적인 면을 가진 경영자였다. 그가 단순히 자신의 경험담이나 경영철학을 평면적으로 늘어놓았다면 그것은 호소력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동국제강에서 일하든, 독립된 기업의 경영자가 되던 도전적으로 일하기를 원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가르쳤다. 
 
■ 철인(鐵人)의 가을
철인(鐵人) 장상태 회장이 일본의 한 병원에서 췌장암이라는 피할 수 없는 엄숙한 선고를 받았다. 그의 심중에는 인생의 파노라마가 흘러갔고, 얼마 뒤 그는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정리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관(靜觀)까지는 아니라 해도 아버지 대원 거사가 세상과 이별하던 나이가 70대 중반이었다는 것을 헤아려보면서 자기도 의연하게 죽음을 맞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아버지는 단호하면서도 의연했다.

“우리 장 전무가 앞으로 잘 할기다.” 그는 누구에게도 후계 구도를 선언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도쿄를 떠나면서 비로소 이 말을 했다. 장남이 자기의 뒤를 이어 갈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평사원부터 시작해 임원에 이르기까지 현장을 익히고 혹독한 경영 수업을 익힌 장남을 동국제강의 방향타를 잡는 후계자로 선택한 것이다. 

미국에 가서 수술을 받았지만, 너무 늦은 수술이었다. 희망을 품고 출국했지만, 절망으로 귀국해야 했다. 그는 전경두 부사장(1999년 12월 26일)에게 회사가 큰 동요 없이 앞으로 닥쳐올 변화를 맞을 수 있게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전경두 부사장은 그 말을 들으며 동국제강 30여 년을 새삼스레 되짚어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그는 인생무상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장 회장의 투병하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것은 여느 때의 느낌과 달랐다. 그는 장 회장이 휠체어에 앉아서 눈을 감고 고심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병중의 육친을 지켜보는 듯 가슴이 아팠다. 이제 저 어른 뵐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장상태 회장은 2000년 4월 4일. 7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정부는 한국철강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공로를 인정하여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장상태 회장은 2000년 4월 4일. 7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정부는 한국철강산업 발전을 이끌어온 공로를 인정하여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2000년 3월에 이르러서는 그의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 그토록 열정적이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았던 그가 이제는 매사를 힘들어했다. 심지어 친척이나 회사 측근들이 곁에 와 걱정스럽게 자기를 살펴보는 일마저 부담스러운 듯했다. 거부할 수 없는 그 날이 아주 가까운 곳에 이르렀다. 무겁고 부담스러운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4월 4일이었고, 시간은 오전 8시가 넘은 아침나절이었다. 담당 의사가 환자의 맥박과 숨결을 확인한 뒤 묵묵히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운명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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