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유토피아 꿈을 좌절시키는 ‘꼰대 문화’

황병성 칼럼 - 유토피아 꿈을 좌절시키는 ‘꼰대 문화’

  • 철강
  • 승인 2021.11.0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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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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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어는 1515년 네덜란드와 조약 체결을 위해 영국의 외교사절로 플랑드르 지방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페터 힐레스를 만난 후 ‘유토피아’를 집필한다. 이 책은 토머스 모어와 페터 힐레스가 유토피아라는 나라에 대해 질문하면 유토피아 시민이었던 라파엘 논센소가 대답하는 대화체로 쓰여 졌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이상 사회 구현이 글쓴이가 그리고자 하는 세상이었다. 

그는 이상 사회를 그리며 사유재산 부정, 계획적인 생산과 소비, 인구 배분 합리화, 사회적 노동 계획화, 노동 조건 개선, 소비의 사회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를 염원했다. 그러나 유토피아 역시 노예가 존재하며 필요에 따라 전쟁을 하거나 식민지를 만드는 등 제국주의적 모습이 있었다. 이 때문에 유럽 중심 세계관과 사고의 한계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기서 노동 조건 개선은 눈여겨 볼만 하다.

유토피아에서 주민의 기본적인 생업은 농업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농업에 종사한다. 이외 모직·면직 기술이나 석공·철공 등의 일을 한 가지씩 배우게 한다. 그리고 이들은 하루에 6시간씩만 일하게 한다. 저녁에는 식사가 끝난 다음 한 시간 동안 오락을 즐기게 한다. 이것은 개정된 우리의 근로기준법과 유사하다. 주52시간근무제도가 그것이다. 이 제도는 근로자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도입됐다. 500여 년이 흐른 후에야 토머스 모어가 그리던 세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가 추구하던 세상은 풍자 소설로 끝났다. 하지만 현재 노동 조건의 변화는 그가 추구한 것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다. 이것을 접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유토피아 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워라밸’ 세대라고 하는 1988년생에서 1994년생이 중심이 되는 직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처우 개선이 가장 큰 이슈이다. 특히 잘나가는 IT 기업은 타 업계 종사자들이 위화감이 생길 정도로 근무 조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인력 이탈을 막는 데 목적이 있지만 그 처우가 타 업계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한 IT 회사에서 과도한 업무로 개발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 회사가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경우 전산시스템을 차단하는 것이다. 만약 초과 근무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책임자를 징계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라고 한다. 금요일에는 조기 퇴근 하는 주 4.5일 제도, 크리스마스 전후로 약 10일 간 전사 휴무 기간을 갖는 ‘겨울방학’ 제도를 도입한 업체도 있다. 완전 근무자율제도를 도입한 업체가 있는가 하면 주4일 근무제를 도입한 업체도 있다.  

워라밸 세대의 핵심 가치는 나 자신(Myself), 여가(Leisure), 성장(Development)이다. 직장 생활을 우선시하는 것을 당연시 여겼던 과거와 달리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업계를 냉철히 들여다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보수적인 직장 문화가 주류를 이루다 지금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많이 바뀌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때가 찌든 옷을 다 벗지는 못한 것은 아쉽다. ‘꼰대 문화’가 여전히 유산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꼰대 문화에서는 지위가 더 높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사는 사회 분위기나 젊은 세대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직원들의 요청이나 처우 개선을 위한 요구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권위적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심지어 의견을 표현할 자격이 본인에게만 있고, 타인에게 나와 다른 생각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상사는 직원들에게도 최악일 뿐만 아니라 회사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낙원을 그린 유토피아는 여전히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다. IT 업계의 근무조건을 따져보면 우리 업계 유토피아는 먼 남의 일처럼 여겨진다. 획기적인 대우가 가능하게 한 저들의 좋은 경영실적이 부러울 따름이다. 마냥 부러워 할 수 없는 것은 우리 업계도 워라밸 세대들이 직장의 중심이 되고 있다. 직장이 아닌 개인을 더 중요시하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여전히 꼰대 문화로 옥죈다면 발전은 없다.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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