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동짓달 기나긴 밤에…
황병성 칼럼 - 동짓달 기나긴 밤에…
  • 황병성
  • 승인 2021.12.2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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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가 지났다. 동지는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대설과 소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1월 중, 양력 12월 22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270° 위치에 있을 때이다.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해 동짓날에 이르러 극에 달하고, 다음날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고대인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축제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동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팥죽이다. 이는 동지두죽(冬至豆粥)·동지시식(冬至時食)이라는 오랜 관습에서 유래했다. 팥죽은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 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새알심’이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팥죽을 다 만들면 방과 장독·헛간 등 집안 곳곳에 놓았다가 식은 다음 식구들이 모여서 맛있게 먹던 것이 생각난다.

동짓날의 팥죽은 시절식(時節食)의 하나이면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즉, 팥죽에는 귀신을 쫓는 기능이 있다고 보았으니, 집 안 여러 곳에 놓아둔 것은 악귀를 쫓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고 전해오는 풍속이 있었다. 이에 한 살이라도 더 먹겠다고 새알 단자를 먹기 위해 동생과 싸우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팥죽은 이제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에만 해도 동짓날에만 먹던 별식이었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길었고 이후 차츰 짧아지지만 옛날 농촌의 겨울밤과 같았다. 농촌은 변변한 놀이가 없었기에 긴 밤을 마실을 가거나 사랑방에서 가마니를 짜면서 보냈다. 여명(黎明)의 아침은 깊은 잠의 늪을 지나서 아주 늦게 찾아왔다. 이에 조선 최고 명기(名妓)이자 송도삼절(松都三絶) 중 하나인 황진이는 시조에 ‘동짓달 기나긴 밤’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동지가 지나면 실제로 한 살을 더 먹는 새해가 찾아온다. 긴 밤이 지나고 나면 아침이 찾아오는 이치와 같다. 올해 우리 업계는 동짓날 밤처럼 어려운 상황을 유난히 길게 겪어야 했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힘겨운 한 해였다. 기업은 경영하기가 더욱 어려워졌고,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내몰린 사람도 많았다. 모두가 코로나19 팬데믹이 원인이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이 상황이 내년에도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올해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부터 전해 내려온 어려움 극복 DNA를 믿기에 새해 임인년(壬寅年)을 맞는 마음이 무겁지 않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으며 기업을 영위해 왔기에 지금의 고난이 좌절할 만한 어려움이 아니라고 본다. 이에 내년에도 우리 업계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이 험난한 파도와 맞서 용기 있게 싸워 나갈 것이다. IMF 사태와 미국 발 금융위기도 슬기롭게 이겨냈다. 그러니 지금의 어려움은 극복하지 못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현실에 대비하면 희망이 보인다. 기다림의 미학이 이 시조 내용에 담겨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가운데를 베어 내어서/따뜻한 이불 속에 얼기설기 넣어 두었다가/정든 님 오신 날 밤에 길게 길게 펼치겠다.’라는 내용은 희망찬 내년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과 같다.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버티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의미와 같다. 이에 올해의 어려움은 희망찬 내년을 기약하는 진통으로 생각하니 신축년(辛丑年)을 보내는 마음이 아쉽지 않다.  

올 한해 코로나19로 마음 졸이며 본업에 충실한 전국 독자들의 노고가 이처럼 위대해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은 한해 마무리 잘 하고 2022년에는 더욱 발전된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내년은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전진하는 해로 만들어 땀의 결실이 소중한 열매로 맺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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