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만큼 서민들에게 친숙한 식품이 있을까?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것이 라면이었다. 유래가 뜻밖이다. 중공군이 국수를 튀겨 휴대하고 다닌 것이 시초였다. 국수를 기름에 튀기면 부패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착안해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전투식량으로 개발한 것이다. 이 방법이 중·일 전쟁을 치르면서 일본에 전해지며 본격적인 라면 전성시대가 열렸다.
라면은 한국인의 솔 푸드이다. 배고픈 시절 저렴한 가격으로 행복을 선사하던 식품이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태어난 것은 슬픈 현실에 기인하다. 6·25 전쟁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60년대였다. 삼양식품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에서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먹으려고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싼 가격으로 배부르게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라고 생각한다. 백성들을 굶기지 말라는 창립자 인촌 김성수 선생의 유지도 떠올랐다. 라면 설비 도입을 결심한 계기는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막상 설비를 들여오려니 자금이 부족했다. 이에 전 사장은 당시 실세였던 중앙정보부장 김종필(JP)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 요청을 받은 JP는 농림부에서 보유한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쓸 수 있게 주선해 준다. 이 돈을 갖고 일본 라면 설비 제조회사 오쿠이(奧井) 사장을 찾아가 한국 식량사정의 절박함을 얘기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당시 오쿠이 사장은 한국전쟁이 일본 경제 재건에 기여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설비 두 라인을 2만5,000 달러에 싸게 팔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입한 설비로 생산한 라면으로 종로 네거리에서 시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 사람들은 매운 것을 좋아하니 고춧가루를 더 넣으면 좋겠다.”라고 조언한다. 이 말의 의도는 다른데 있었다. 매우면 물을 많이 마신다. 그러면 포만감이 더 생기는 만큼 배는 긴 시간 꺼지지 않는다. 당시 식량 절약 정책에 부합한 것이었지만 대통령은 이 말을 해 놓고 마음이 편했을까? 이렇게 라면은 서민들 곁으로 와 일용할 양식이 됐다.
시대가 변한 지금 라면 위상도 바뀌었다. 취향에 따라 즐겨 먹는 기호식품이 된지 오래다. 86아시안게임 때 라면만 먹고도 3관왕이 됐다는 임춘애 선수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당시 전해지는 과정에서 와전된 부분이 있었지만 빈곤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라면은 지금은 수출 효자 품목이 됐다. 올해 상반기 수출액이 3억8,340만 달러(약 4,976억원)로 역대 최대였다. K-POP·영화·드라마 등의 인기를 등에 업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은 단연 세계 1위이다. 한 사람이 1년에 70개 이상 소비한다. 최애 식품임이 증명됐다. 소비자 물가 상승이 라면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추석 이후 농심이 가격을 10% 이상 올린다고 한다. 업계 1위 업체의 결정인 만큼 타 업체도 뒤따르지 않을까 걱정된다. 가격 인상 배경에는 국제 곡물 가격을 비롯해 밀가루 가격 상승이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 시선은 곱지 않다. 이유가 있다. 경영실패를 가격 인상으로 보전하려는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농심의 지속적인 적자는 경영합리화 노력을 게을리한 탓이 크다. 자신들의 노력은 뒷전이고 가격부터 올리려는 속셈은 문제가 있다. 소비자를 봉으로 생각하는 처사이니 심히 못마땅하다. 당면한 여건상 가격을 올리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소비자 평균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것은 문제가 있다. 라면의 위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 서민들의 식품인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가난한 취업준비생의 한 끼이고, 노숙자의 한 끼가 되기 때문이다. 고달픈 삶을 사는 그들에게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라면 가격 인상을 바라보는 우리 업계는 회의감을 크게 느낀다. 타 산업은 가격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을 때 오히려 가격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가격 인하는 하반기 경영실적에 큰 마이너스다.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이미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반기 잔치 여흥이 다 가시지 않았는데 현실이 매몰차다.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르는 것이 물가이다. 그러나 철강금속 제품 가격은 다르다. 원자재 가격에 따라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부러우면 진다고 했지만 차라리 라면 업계가 부럽다. 이처럼 우리 업계의 현실이 답답하지만 답이 없으니 실망감이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