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추석 단상(斷想)

황병성 칼럼 - 추석 단상(斷想)

  • 철강
  • 승인 2022.09.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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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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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상(無常)함은 해가 거듭할수록 절실히 느낀다. 일상의 변화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잘 적응한다. 그러나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 있다. 고향의 변화가 그것이다.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동산과 들판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하지만 몸을 맞대고 살았던 피붙이와 친족들이 저세상으로 가고 없음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다.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더욱 그렇다. 늘 있었던 그 자리 그대로 있는 것 같은 착각에서 갖는 실망감도 크다.    

추석은 설과 함께 큰 명절이다. 특히 추석은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도 가장 풍성하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고 부모형제가 만나 우애를 나눈다. 하지만 유수 같은 세월을 거스를 수 없음이 안타깝다. 늘 사랑으로 아랫사람을 보듬어주던 웃어른의 부재(不在)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혈육이라면 더욱 그렇다. 차디찬 몸으로 뒷산에 누운 조부와 조모,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은 명절이 되면 더욱 사무친다. 

백발의 노모는 힘겨운 노구(老軀)를 움직여 손수 차례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며느리들이 힘들어할까 봐 그렇게 마음을 써 놓고는 “괜찮다”며 자식들의 걱정을 무마시킨다. 그 모습을 보며 또다시 아쉬운 마음이 크다. 당신도 언젠가는 아버지 곁에 가실 거라고 생각하니 평소의 불효가 자괴감으로 가슴을 쳤다. ‘자식이 효도를 하고 싶어도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중국 고전이 언뜻 생각났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다. 돌아가시고 나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이 부모이다. 생전에 효도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다. 알고도 실행을 하지  않으니  더욱 죄스럽다.

차례를 지내고 난 후 무성한 뒷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촌누이는 울진지역 산불 복구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성금이 820억 원이나 들어왔다고 하는데 실질적인 지원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겨울이 저만치 왔는데 집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나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산불 나기 전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고 했다. 녹녹하지 않은 현실의 벽이 너무 높은 것 같았다. 누이의 안타까운 처지를 걱정하며 위로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포항에 사는 사촌동생은 태풍 ‘힌남노’의 피해 복구를 걱정했다.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지만 그 또한 포스코와 연관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하늘이 물 폭탄을 퍼붓자 포항시는 물바다로 변했다고 한다. 특히 큰 폭발음과 함께 포스코의 화재를 직접 목격했다. 태풍의 여파로 고로가 가동 중단된 것을 신문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그는 “포스코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강기업이기 전에 포항시에서는 가족 같은 기업이다. 빨리 복구했으면 좋겠다”라고 진심으로 바랬다.

2박 3일 일정을 마치고 상경하는 길에서 만난 것은 교통체증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며칠을 향수병에 걸려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 노모에 대한 걱정으로 불면의 밤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자식은 유난스럽다고 흉을 보았다. 속으로 “너도 내 입장이 돼보라”라고 나무란다. 간극이 벌어진 세대 차이를 좁힐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명절 끝 후유증은 항상 있어왔다. 시간이 해결해 주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시간이 길어진다.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형제끼리 도란도란 이야기가 정겨웠던 밤의 추억을 잊을 수 없어서이다.

자식들이 떠난 고향에는 수줍은 웃음의 들꽃이 여전하고, 종아리를 간질이던 시냇물도 졸졸졸 소리 내어 흐를 것이다. 이제 곧 들국화가 꽃잎을 떨어뜨리면 가을은 강물처럼 깊어진다. 빈 들판에는 무서리가 서럽게 내리고, 기러기가 서쪽으로 날아가면 더욱더 스산한 계절이 된다. 그 광경을 보며 외로운 노모는 객지로 떠난 자식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이렇듯 금방 눈감으면 그려지는 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향수병이 되었다. 명절이면 주체하지 못하고 달려가게 하는 이유다. 다만, 아쉬운 것은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머님과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더 큰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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