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남명 조식과 지수초교 졸업생들…

황병성 칼럼 - 남명 조식과 지수초교 졸업생들…

  • 철강
  • 승인 2023.04.1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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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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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南冥) 조식(曺植)은 조선시대 유학자들 가운데서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그는 사직소를 통해 당대 정치를 과감히 비판한 것도 있었지만, 역대 인물에 대해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로 비판한 것도 두드러졌다. 이에 성호 이익(李瀷)은 그를 “우리나라 기개와 절조의 최고봉(東方氣節之最)”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벼슬을 사양하고 평생 초야에 묻혀 처사로 지내며 내면의 수양을 뜻하는 ‘경’(敬)과 도의 적극적인 표출을 의미하는 ‘의’(義)를 동시에 추구하는 ‘경의학’을 학문의 핵심으로 삼았다. 

퇴계 이황이 순수한 학문적 관점에서 성리학의 이론 공부에만 심취했다면 남명 조식은 이 같은 이론 논쟁을 비판하면서 실천 문제에 관심을 집중했다. 노장 사상 등 이단에 대해서도 비교적 포용적이었다. 이처럼 이황과 반대되는 이론으로 조선 중기 당대 최고 유학자로 꼽히며 실용과 실천을 강조한 그의 학문을 추종한 제자들은 ‘남명학파’라고 불리웠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 맞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정유경, 최강 등 대표적 의병장이 제자들이다. 이 남명이 태어난 곳은 진주목 삼가현이다. 

최근 ‘재벌 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재벌 집 막내아들이 되려면 부모가 재벌이어야 한다. 이 재벌을 많이 배출한 곳이 남명이 탄생한 진주시 지수면의 지수초등학교이다. 삼성 이병철 회장, LG 구인회 회장,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 등 대한민국 대표적인 기업가들이 이 학교 1회 졸업생이다. 이와 함께 구태회 LS그룹 창업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 허준구 GS그룹 명예회장,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등 국내 경제계의 수많은 거물들이 꿈을 키웠던 곳이 바로 이 초등학교다. 

이 면면들을 보면 풍수지리학 적으로 이곳이 명당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도전과 실천을 강조한 남명 조식의 정신이 계승되어 국가 발전에 공헌한 인물을 배출했다. 그러나 많은 재벌을 배출한 지수초등학교는 지금 문을 닫았다. 폐교가 된 학교에는 ‘K-기업가정신센터’가 들어섰다. 재벌 배출 성지가 된 이곳의 상징적인 의미를 높이기 위한 전시공간과 교육센터를 마련했다. 이 센터는 2018년 한국경영학회가 진주시를 K-기업가정신 수도로 선포한 것을 계기로 진주시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힘을 모아 K-기업가정신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지난해 3월 문을 열었다. 

이 센터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다. 1층은 한국 기업 성장사와 한국 경제 발전사를 일목요연하게 구현해 놓았다. 2층은 기업가정신 교육 강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개소 1년 동안 주로 CEO 중심의 연수를 했다. 이곳의 연수는 인기가 높아서 많은 CEO들이 북적거린다. 다 이유가 있었다. 성공한 기업인의 기(氣)를 받아가려는 경영자들과 프로그램의 다양화가 발길을 잡은 이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직장인, 학생까지 대상을 확대한다고 하니 기대를 더욱 부풀게 한다.

남명 조식은 선비들이 공부한다는 핑계로 부모의 고혈을 짜고,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고 비판했다. 또 학자들은 물을 뿌리고 청소하는 절차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天理, 하늘의 진리)를 담론하며 허명을 훔친다고 못마땅해 했다. 이처럼 실천을 강조한 남명의 사상과 혁신, 결단은 진취성으로 대표되는 K-기업가정신과 통한다. 기업가는 무엇보다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점에서 실천 유학자 남명 사상과 기업가정신은 일맥상통한다. 후세들이 이 뜻을 이어받아 성공한 기업인으로 국가에 이바지했고, 그 뜻이 지금도 센터를 통해 이어가고 있다.

지수초등학교에서 재벌이 많이 배출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당대 거목이었던 유학자 남명 조식의 정신이 계승되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곳이 재벌 탄생의 성지가 된 것만은 틀림없다. 앞에서 언급한 풍수지리를 맹종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터 좋은 곳에 지역 유명 유학자의 깊은 뜻을 받들어 실천하고 이어받은 기업가 정신이 재벌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기업가정신센터를 통해 유지를 이어가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헛되지 않고 알찬 결실로 이어지고 있음은 다행이다. 향후 더 많은 재벌이 탄생하는 체험의 장으로서 이름을 더 높이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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