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머슴의 ‘고봉밥’

황병성 칼럼 - 머슴의 ‘고봉밥’

  • 철강
  • 승인 2024.03.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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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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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가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 임금(賃金)이다. 고용자와 피고용자와의 계약에 의해 성립된 노동 용역의 보수이다. 급여(給與), 노임(勞賃)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머슴들에게 지급되는 것은 ‘품’, ‘품삯’이라고 했다. 머슴은 하층 신분이었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농사를 지을 때 소가 큰 자산이던 시절이 있었다. 밭 갈고 논을 갈 때 농기계 대신 소가 쓰였기 때문이다. 머슴도 마찬가지다. 농업이 유일하게 먹고살기 위한 업이었던 그때 머슴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문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정도였기에 대우도 좋았다. 

농번기가 되면 유일하게 쌀밥을 먹는 사람이 머슴이었다고 한다. 고된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잘 먹어야 했던 것이다. 주인이 같이 중노동을 하지 않는 경우 머슴만 쌀밥을 먹고 나머지 식구들은 잡곡밥을 먹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만 집안에 농사일을 할 장정이 없는 경우 대부분 머슴을 고용해 농사를 지었다. 이런 경우 비교적 품삯도 후했고 대우도 좋았다. 밥도 잘 먹였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나온 말이 ‘머슴 밥’이다. 큰 밥그릇에 하얀 쌀밥을 고봉밥으로 채운 것을 머슴 밥이라고 한다.

잡곡밥도 먹기 힘든 시절에 머슴에게 쌀밥을 먹었다면 그 주인은 현명하다. 요즘 같으면 현명한 경영자로 불린다. 피고용인이었던 머슴은 지금의 직장인과 같은 신분이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청문회에 나와 임원급 직원을 머슴이라고 불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니지만 그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잘못 됐다. 그가 인식하는 직원들에 대한 생각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가 망한 것이다. 조선시대 머슴을 상전처럼 모시듯 하던 어느 고을 양반보다도 못한 인식으로는 회사가 흥할 수가 없다. 

머슴들에게 고봉밥을 먹이며 대우가 좋았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차질 없이 농사일을 마치기 위해서이다. 그 다음이 일 잘하는 머슴을 오래도록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머슴은 노비와 신분이 달랐다. 노비는 세습되지만 머슴은 엄연한 피고용인 신분이었다. 수가 틀리면 주인집을 나오기 일쑤였다. 지금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 높은 연봉과 워라밸이 보장되는 곳을 찾아다니는 직장인들과 닮았다. 옛날에도 그랬다. 높은 품삯과 고봉밥을 주는 집이 머슴들에게는 최고 일터였다. 그것을 양반이 만들었고 지금은 경영자가 만든다.  

한보 정태수 회장과 같은 인식으로는 이러한 직장을 만들 수 없다. 경영자의 올바른 인식과 행동이 좋은 일터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이다. 하지만 머슴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놀부 심성을 가진 양반의 처사 때문에 가문이 기우는 경우가 있다. 무능력한 경영자로 회사가 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머슴과 구성원들에게 전가하는 것을 보면 실망스럽다. 한국전력이 좋은 예이다. 4급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임금반납 원인을 쫓아가 보면 ‘정책 실패’, ‘방만 경영’이 자리한다.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는데 직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 업계도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 업체의 임금 일부 반납 소식이 비보로 전해졌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은 이해가 간다. 회사의 생존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있어야 내가 있고 회사가 없으면 나의 존재도 의미가 없다. 그래서 회사가 내놓은 최선의 방법이 임금 반납일 수 있다. 하지만 경영 정상화를 위한 상징적인 방법일 수 있으나 씁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이것이 진짜 최선의 방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기업 사에서 ‘연봉반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은 외환위기가 촉발된 1997년부터이다. 그 해 선경(현 SK), 기아, 한진, 진로 등 대기업들이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이때 임직원들에게 연봉을 반납하게 하거나 급여를 동결·삭감했다. 낡은 유산이었던 이 방법이 다시 등장한 것은 달갑지 않다. 지금은 열심히 일한 대가로 성과급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시하는 시대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 방법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몸담은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희생할 수 있을지도 생각하게 한다. 기업의 어려움을 본인과 동일시하지 않는 점도 달라진 모습이다. 평생직장에서 참고 견디며 승진을 기대하기보다, 당장 경제적 실리를 따지겠다는 직장인이 지금은 태반이 넘는다. 한전이 성과급 반납을 추진하면서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납한 돈이 희망퇴직 재원으로 쓰이는 ‘십시일반’의 희생양이 된 직원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다. 머슴의 고봉밥에 담긴 의미를 생각한다. 회사의 존재도 생각한다. 그리고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도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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