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중소기업 사장이 출근하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쉰다. 이유는 결근을 밥 먹듯이 하는 김 대리 때문이다. 오늘이 납품날인 데 차질이 불가피하다. 김 대리는 결근은 물론 지각도 일상화되어버렸고 근무시간에는 농땡이 치기가 일쑤다. 그래도 해고시킬 수 없다. 근로기준법도 따져야하지만 만약 해고시키면 회사 업무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 기술자인 데다 요즘은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그래서 사장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참을 인(忍) 자를 되뇌며 참고 또 참는다. 결국에는 화병이 발생했지만 내색할 수도 없다.경영자의 이러한 고민은 어느 한 기업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중소업체들이 겪고 있다. 어려운 경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보지만 직원들이 도와주지 않으니 더욱 힘겹다. 백지장도 맞들면 났다는 데 직원들의 근무태도가 나태하니 생산성도 뚝뚝 떨어진다. 누군가가 나서서 해결해 주면 좋으련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러한 요즘 상황을 두고 옛날 ‘보릿고개’와 같다고 비유한다. 코로나19의 고개를 힘겹게 넘어왔지만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장이 근무태만 직원을 속 시원히 해고할 날이 머지않았다. 당장 눈앞에 닥쳐왔다. ‘쓰나미’처럼 노동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의 거센 물결을 두고 하는 말이다. AI가 인간 일자리를 빼앗기 위한 공습이 시작됐다. 속도는 유성처럼 빠르다. AI가 향후 2년 내 선진국 일자리의 60%, 전 세계 일자리의 40%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로이터통신의 최근 보도가 이것을 입증한다. 인간이 방심하는 사이 AI는 야금야금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 피곤해하지도 않고 나태하지도 않은 AI는 경영자들의 최애 직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철야를 시켜도 불평하지 않는 24시간 에너자이저가 AI이다. 연장근무수당도, 연차수당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생산성도 인간보다 뛰어나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우수 사원이다. 직원들로부터 받을 스트레스가 없으니 살만 할 것이다. 그러니 많은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AI 직원을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해질 것이다. 아직 그 물결이 잔잔하지만 조만간 기업마다 격랑으로 몰아칠 것이다. 첫걸음마을 떼며 우리 업계에도 동참하고 있다. 우리 대기업들이 AI 도입이 상당히 진척을 보이는 것은 대세를 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이 국내 일자리 327만 개(13.1%, 2022년 기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AI 시대 본격화에 대비한 산업인력양성 과제’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일자리 소멸 위험성이 큰 업종은 제조업(93만 개)·건설업(51만 개)·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46만 개)·정보통신업(40만 개) 등으로 조사됐다. 특히 제조업은 전자부품제조업·전기장비제조업 등이 위험하다고 밝혔다. 직종별로는 전문직 일자리 196만 개가 AI에 대체될 수 있다고 분석됐다. 전체 위험군의 59.9%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일자리 대체 직종은 고용과 임금의 부침이 심한 직종이다. 그래서 경영자들이 AI 도입을 학수고대한다. 사람 구하기 어렵고 임금 인상 요구도 거세니 사장들에게는 골칫덩어리다. 그것을 Al가 앞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하니 만세를 부를 정도로 희소식일 수 있다. 반대로 일자리를 AI에 빼앗기게 된 인간들에게는 낙심할 소식이다. 이렇듯 한쪽에 웃는 사람이 있으면 한쪽에는 우는 사람이 있는 것이 AI 시대 새로운 세태이다.
AI 시대 가장 심각한 문제가 청년취업 해결이다. 지금도 절벽이 된 청년취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가 지면 다시 떠오르는 것이 이치다. 데이터분석가, 로봇 관련 업무, 인공지능 개발자, 온라인 콘텐츠 제작자 등 수없이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탄생할 것이다. 이에 정부와 업계의 인력 양성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 정책은 개발인력 양성에 한정돼 있고 일자리 사라짐 충격의 대비는 부재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음에도 이토록 태평스러운 것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을’ 공산이 크다.
AI 기술은 일상과 업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 이상의 의미이다. 기술의 진화는 생활과 업무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이에 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기업은 AI 기술을 자사 제품과 서비스에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AI가 가져올 변화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고 이를 우리 삶과 산업에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와 함께 AI 기술이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인 측면의 대비도 당면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