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드디어 올 것이 왔다”

황병성 칼럼-“드디어 올 것이 왔다”

  • 철강
  • 승인 2024.05.2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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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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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는 반응이다. 물밑에서 잠수하던 정년연장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공론의 장이 아닌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양분된 주장을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다. 그래서 섣부르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노사가 눈치만 보던 화두(話頭)였다. 이것을 용기 있게 꺼낸 곳이 현대자동차 노조이다. 노조는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국민연금 수급과 연계한 정년 연장을 요구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요구안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사회적 동심원이 심상찮다.

현재 국민연금 수령 나이는 63세이다. 2033년부터 65세로 연장된다. 이에 현대차 노조는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최대 만 64세까지 연장하자고 요구했다. 기아차 노조 역시 사측에 현대차와 같은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중공업·현대삼호·현대미포 노조도 65세로 연장하는 임단협 공동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또한 공적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맞춰 65세 정년 연장을 주장하며 정치권과 연대도 검토하고 있다. 정년연장의 물결이 서서히 소용돌이로 몰아칠 조짐이다.

그러나 기업이 노조의 주장을 들어줄지는 의문이다. 대부분 기업들은 정년연장을 환영하지 않는다. 시기상조라며 난감해 한다. 기업이 반대하는 것은 청년 채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 취업난이 심각한 데 나만 살자고 정년을 연장하면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기업은 ‘과부 사정을 홀아비가 안다’는 심정으로 청년실업의 심각함을 이유로 들었다. 일견 이 주장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설득력을 얻기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업계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기업이 많다. 특히 중소기업이 그렇다.

단절은 회사의 존폐를 좌우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곳이 중소기업이다. 만약 고숙련 기술자가 60년 정년에 걸려 퇴직한다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특히 국가 기간산업을 떠받치는 금형, 열처리, 소성가공 등 뿌리기술의 장인들은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장인들이 옷을 벗으면 기업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더구나 청년들은 3D 업종으로 분류되는 이 업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뿌리가 흔들리면 거대한 제조업의 나무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에서 정년연장은 최후 수단일 수 있다.

반대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노조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탐탁잖게 여기는 것 같다. 젊은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를 지적한다. 청년들의 건전한 고용을 위해 기회는 많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맞다. 만약 정년연장으로 그 기회가 없어지거나 줄어든다면 이처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나 혼자 잘 살자고 형제와 자식들의 앞길을 막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심심찮게 국민연금 고갈 경종이 울린다. 이것이 현실이 되면 20∼30년 후에는 지금의 젊은이들이 월급 상당을 국민연금에 뜯겨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젊은이들은 자금 고갈의 원인을 기성세대로 지목할 것이 뻔하다. 자칫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할 불씨가 정년연장이다. 정년을 법제화한 것이 혼란을 초래 하는 원인이다. 기업은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다. 국가가 법으로 간섭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옳다. 이미 다수 기업들은 정년을 노사 합의로 정한 곳도 있다. 특히 정년연장은 눈앞의 실익을 따질 일이 아니다. 멀리 보아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청년 취업은 당장 닥친 문제일 뿐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정년연장에 현실적이다. 오랜 경험을 가진 ‘숙련 인력’ 확보에 방점이 찍힌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 1위 업체 도요타는 일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시니어직원 재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회사의 정년은 60세다. 다만 65세까지 재고용 제도를 통해 원하면 더 일할 수 있다. 65세 이후에 재고용하는 제도는 없었다. 하지만 올해 8월부터 회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인력을 70세까지 재고용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시니어 직원의 전문 지식과 숙련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는 비단 일본 얘기만은 아니다. 싱가포르도 2030년까지 법정 퇴직 연령을 63세에서 65세로 늘렸고, 프랑스도 62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정년연장 움직임도 피할 수 없는 순서다. 그 돌을 현대차가 먼저 던졌다. 결과에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구직 청년들의 따가운 눈총도 함께 쏠렸다. 두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현명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지만 미래 투자 개념으로 생각하면 희망을 키우는 불씨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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