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중국 선물가격…수급 논리 아닌 중국 가격만 바라보는 韓 철강시장
가격 체계 붕괴 따라 중국에 종속된 기초소재…수입 규제 절실
중국산 등 저가 수입 철강재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가운데 국내 철강업계의 가격 책정 권리가 사실상 중국 철강업계로 넘어간 모습이다.
비상식적인 가격을 무기로 쏟아지는 중국산 열간압연강판 물량에 중국 선물가격 지표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자, 국내 철강업계 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열연강판은 대한민국 전 산업에 사용되는 기초소재로, 중국산 잠식이 이어진다면 자칫 국내 산업계의 소재주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 관계자는 “중간재와 완성품 등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나 기초소재는 그 의미가 다르다”라며 “대규모 장치산업인 철강에서 가장 기초적인 소재가 열연강판이며, 기초소재가 무너진다면 그 영향력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철강업계는 무분별한 중국산 저가 수입을 막고 기초소재 주권을 지키기 위한 무역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오로지 중국 선물가격…수급 논리 아닌 중국 가격만 바라보는 韓 철강시장
국내 철강산업은 중국 철강 시황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중국 철강업은 세계 조강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며 이에 따른 시장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이에 중국 철강 가격은 국내 가격을 선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 등 주변국과 비교해도 국내 가격은 중국 가격에 더욱 큰 영향을 받는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은 수입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라며 “일본의 경우 자국산 철강 선호도가 높으며 수입산에 대해 일정 수준의 포션을 제한하는 등 의식적으로 이미 수입재를 방어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산 열연강판 수입은 약 77만 톤으로 7년래 최대 수준을 나타냈다.
현재 국내 철강 시장의 시선은 중국 철강 선물가격에 쏠려있다. 그 어느 때와 비교해도 중국 철강의 영향력이 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철강 시황이 어려운 탓에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란 전망도 잇따른다.
특히 국내 제조업계의 가격 방침과 시중 유통시장의 가격 흐름보다 중국 철강 가격의 영향력이 더욱 큰 상황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업계 관계자 대부분 중국 선물가격을 매일 검색하고 있을 것”이라며 “중국 선물가격 동향이 국내 철강 가격 결정의 중요 요소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열연강판 선물가격은 중국 2급밀 오퍼(Offer)가격의 선행지표로 활용됐으나, 현재는 사실상 국내 열연강판 가격의 지표로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원료 등 제조원가가 오르는 가운데 수요가 늘어나면 판매가격이 오르는 것은 상식”이라며 “하지만 중국 선물가격이 약세를 보이면, 수급과는 관계없이 시장에 가격 방침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 가격 체계 붕괴 따라 중국에 종속된 기초소재…수입 규제 절실
국내 철강시장만의 온전한 가격 체계가 붕괴한 상황에서 철강업계는 수입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근 흐름을 비춰볼 때, 국내 열연강판 시장은 중국 철강시장에 종속된 것 아니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국내 산업계에서 기초소재로 사용되는 열연강판의 시장 주도권이 중국 철강업계로 넘어가면 잇따를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연간 국내 조강생산량 6,000만 톤 가운데 열연강판 생산량은 3,000만 톤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외판 물량만 연간 600만~700만 톤 수준을 형성한다. 사실상 철강산업을 대변하는 품목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 철강 가격에 국내 열연강판 가격이 종속된 상황이 지속된다면 대한민국 철강산업은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소재주권을 위해 무역장벽을 반드시 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격을 책정할 권리를 잃은 사업체가 어떻게 사업을 이어가겠나”라며 “중국 철강 가격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해 중국산 열연강판에 대한 규제를 미뤄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 철강 제조업계도 무분별한 중국산 열연강판 수입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 중이다. 지난 10월 25일, 현대제철은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국내 산업피해에 미치는 영향과 피해 사실 관계를 검토하고 있으며 반덤핑 제소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포스코도 10월 30일 진행된 실적발표회에서 “유럽연합, 호주, 영국 등이 중국산 열연강판을 대상으로 자국 산업을 위해 규제를 시행 중이다”라며 “불공정 무역 및 저가 수입재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으며 불공정한 무역 행위에 대해 반덤핑 제소의 필요성 등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