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정희 보고넷 대표이사
철스크랩 AI 검수 시스템, 아직은 초기 단계
AI 시스템 간에도 기술적 차별성 뚜렷
산업 표준화 등 제도적 지원 마련 시급
해외 시스템 도입 시 데이터 주권 위험도
기술 검증 통한 산업 생태계 선순환 必
철강산업에서 철스크랩은 철광석 못지않게 중요한 원료다. 국내 제강사들이 한 해 구매하는 철스크랩 규모는 약 15조원이 넘지만 그동안 철스크랩 분류는 대부분 현장 작업자의 육안에 의존해 왔다.
이로 인해 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과 휴먼 에러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실제 한국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최근 10년간 38.6세에서 43.1세로 높아지는 등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반면 안전과 품질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엄격해져 인력 감소 속에서 과거 수작업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 철스크랩 야적장에서 폭발 사고로 작업자가 희생되는 등 안전 문제가 불거졌고 불량품 혼입으로 생산 차질을 빚는 사례도 업계에 경각심을 주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보면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이미 인공지능(AI) 기반 철스크랩 분류·검수 도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해외 선진사례에 뒤처지지 않고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AI 기술 도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되고 있다.
■ AI 기술,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나
철스크랩 입고 단계부터 AI를 활용하면 안전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AI 검수 시스템은 철스크랩 입고 차량이 반입될 때 AI 카메라가 적재된 철스크랩의 하화 장면을 모니터링하면서 자동으로 철스크랩의 등급과 비율을 분석해 입고 차량의 등급 판정을 진행한다. 또한 폭발성 물질이나 밀폐 용기 등 위험물 역시 실시간으로 탐지한다.
이렇게 검수된 정보는 모든 현장에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작업자 숙련도에 따른 편차 없이 검수의 표준화가 가능해진다. 또한 검수장으로 들어온 차량을 AI가 자동으로 지속 추적하기 때문에 기존 검수 방식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현장의 불편함도 최소화할 수 있다.
추후에는 한 명의 관리자가 여러 야적장 전체의 AI 검수 시스템을 원격으로 모니터링해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위험한 작업환경에 투입되는 인원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강 전기로에 투입되는 장입 공정에서도 AI의 활용 가치는 높다.
철스크랩은 등급에 따라 철 함유 성분이 다르며 용해 속도와 품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AI가 철스크랩의 등급·성분 데이터를 분석해 용탕(溶湯)의 화학성분을 예측함으로써 정확한 원료 배합과 공정 최적화를 도울 수 있다.
예컨대 AI 솔루션이 추천하는 철스크랩의 최적 등급별 비율을 투입하면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실제 업계에서는 이러한 AI 분류 도입으로 산업 전체에 수천억원대의 비용 혁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각 로별(爐別)로 투입된 철스크랩 데이터가 축적되면 추후 제품 품질 문제나 사고 발생 시 원인 추적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일례로 현재 철스크랩 AI 장입 시스템을 도입한 제강사에서는 장입 전후의 상황을 고해상도 카메라로 자동 촬영·저장하고 있다.
저장한 영상데이터로부터 장입 지시사항과 실제 장입사항을 비교 분석하면서 정량화에 대한 효율성과 함께 다양한 문제들을 원인 규명하는 데 용이해 제강팀의 현장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데이터에 기반한 투명한 관리를 통해 제강 공정의 안전성과 신뢰성 그리고 원가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현재 국내 적용 상황은
현재 국내에서 철스크랩 AI 시스템 도입은 초기 단계로 대부분 연구개발(R&D)이나 소규모 PoC(개념검증)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주요 철강사들을 중심으로 발 빠른 시험 적용이 진행 중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한국철강 등 국내 유수 제강사들이 이미 국내 AI 솔루션 업체들과 협력해 현장 테스트를 시작했고, 일부는 전기로 장입 및 입고 검수 공정에서 AI 시스템을 시범 가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부산의 대한제강은 LG CNS와 합작법인 아이모스(AIMOS)를 설립해 독자적인 AI 판정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사 공장과 유통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산업계 전반에 기술 도입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 상용화 초입인 만큼 대부분의 사례가 파일럿(Pilot) 운영이나 실증 사업 단계라도 볼 수 있다.
정확도나 경제성 면에서 목표 수준에 근접한 솔루션도 있는 반면 현장 전체를 대체하기에는 추가적인 검증과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 AI 시스템 간 기술적 차별성이 있나
AI 검수 시스템 간에도 기술 수준에 따라 뚜렷한 성능 차이와 적용 범위의 차별성이 존재한다. 크게 △고도화된 범용 AI 시스템 △위치 고정형 AI 시스템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범용 AI 시스템은 현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입고된 철스크랩 차량의 정차 위치나 각도가 매번 달라도 AI 카메라가 차량을 추적하면서 인식할 수 있고, 이동하는 철스크랩이나 크레인도 실시간으로 추적 분석한다.
다양한 업체의 데이터로 폭넓게 학습된 AI 모델을 탑재해 특정 작업장 조건에 국한되지 않고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신규 현장에 투입될 때에도 최소한의 추가 학습이나 튜닝만으로도 즉시 활용이 가능해 확장성과 범용성 측면에서 우위에 있다.
반면 위치 고정형 AI 시스템같이 제한적인 환경에서만 작동하도록 개발된 사례도 있다.
위치 고정형 시스템의 경우 카메라 각도와 차량 정차 위치가 미리 정해진 상태에서만 정확히 인식이 가능하며 조명이나 배경 등 환경 조건이 달라지면 성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
특정 시나리오에 특화된 솔루션은 범위를 벗어났을 때 대응력이 떨어지고 현장 변동에 따라 검출 실패나 오류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크다. 특히 한정된 유형의 철스크랩 이미지만으로 훈련된 모델을 사용하는 시스템은 익숙지 않은 등급이나 현장이 바뀌면 오인식할 확률이 높아지는 문제가 있다.
초기 도입 단계에서 고정형 접근을 취한 사례도 있었으나 현장에서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기술이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 AI 도입 상용화에서 남은 과제는
이처럼 철스크랩 AI 기술 도입이 확산되며 다양한 형태의 정보가 시장에 공유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부 프로젝트 성과가 과도하게 강조되거나 타 기술에 대한 부정확한 평가가 전달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특정 제강사와 AI 솔루션 업체가 협력해 추진한 프로젝트에 대해 외부에서 실제 성과와는 다른 정보가 전달된 사례가 있었고 이로 인해 여타 기업들의 도입 판단이 지연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AI 기술 도입 초기 단계에서 객관적 검증과 신뢰 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정보 혼선이 이어질 경우 기술력 축적과 현장 적용에 필요한 학습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이는 곧 산업 전체의 성장 속도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술 성과에 대한 객관적 기준과 투명한 정보 유통 체계의 정착이 절실하다.
여기에 최근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 경쟁이 가열되면서 해외 업체들의 국내 시장 공략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AI 철스크랩 솔루션 업체들은 이미 자국 내 100여곳의 제강소에 시스템을 공급하며 기술력을 입증했고, 일본 등 주변국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앞세워 국내 철스크랩 시장을 파고들 가능성이 있는 만큼 데이터 유출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제조 공정 영상이나 원료 정보가 담긴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전송될 경우 산업 기술 유출이나 보안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만 보고 해외 솔루션을 도입했다가 자사 데이터 주권이 침해당하거나 기술 지원이 부실해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 성공적인 AI 검수 시스템 정착을 위해
철스크랩 AI 검수 시스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산업 표준과 평가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 다행히 현재 관련 기관을 중심으로 AI 검수 시스템에 대한 국가 표준 제정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향후 정부와 업계가 협력해 데이터 표준과 등급 체계, 성능 지표 등을 명확히 규정하면 공급자 간 기술 수준 비교가 용이해지고 제강사들도 안심하고 AI 시스템 도입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준화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AI 시대에 데이터는 곧 경쟁력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산업 데이터의 무분별한 해외 유출을 방지하고 데이터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철스크랩 영상 데이터와 분류 결과를 국내에 안전하게 저장·관리하도록 유도하고 민감한 공정 데이터에 대해서는 엄격한 보안 요건을 부과해야 한다.
공급업체들도 정보 보호에 대한 자발적 노력과 책임 의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클라우드 인프라 사용, 모델 투명성 검증 등으로 사용자 불안을 해소해야 국내 기술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 수 있다.
아울러 공정한 시장 평가 체계를 구축해 국내 혁신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가격 위주의 경쟁보다는 인식률이나 판정 정합성 등 정량적 성능 지표와 현장 적용 능력을 종합 고려하는 평가 기준을 업계에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정부나 협회 차원에서 철스크랩 AI 솔루션들을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제공하고 우수 기술에 대한 인증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이를 통해 실제 검증된 기술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게 하고 근거 없는 풍문이나 로비에 휘둘리지 않는 투명한 도입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유망한 국내 기업에 대해 R&D 지원과 세제 혜택을 지속함으로써 이들이 일시적 가격 경쟁에 밀리지 않고 기술 리더십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