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 실장
한국 철강산업이 심각한 부진에 빠져들고 있다. 글로벌 팬데믹 이후 잠시 반짝 호황을 누렸지만, 이후 주요 지표들은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국내 철강 수요는 2016~2020년 하락 흐름으로 되돌아가 지난해 8.8% 감소했으며, 올해 역시 역성장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 여파로 내수와 생산 규모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준까지 떨어졌다.
인건비 상승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철강업체들의 수익성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철강사들의 영업이익률은 2.7%에 머물러 제조업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국내 내수가 어려울 때마다 수출이 이를 뒷받침해왔지만, 당분간 이런 기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철강 고관세 부과와 USMCA 등 원산지 규정 강화로 미국 시장 진출이 점점 좁아지고 있으며, 글로벌 과잉 설비 문제도 여전하다.
철강과 화학 등 통상 마찰이 잦은 산업에서는 연쇄적인 무역 갈등에 대한 우려도 높다. 사업장 폐쇄와 인력 감축, 해외 생산 확대 등으로 산업 공동화 가능성이 제기되는 지역에서는 지역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올해 철강산업의 주요 이슈 가운데 국내 시장과 관련해서는 지난 2월 열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잠정관세 부과 결정과 이후 진행 중인 반덤핑 조사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철강 경기가 부진할 때마다 수입 급증으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철강 수입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5.9% 증가했으며, 올해는 수입이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내수 대비 수입 침투율이 22%에 이르러 과거 철강산업 위기였던 2015~2016년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수입으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적지 않아 무역구제조치를 통한 단기적 시장 보호의 필요성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위기가 경기적 요인만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까지 겹쳐 있다는 점이다. 저출산·고령화의 진전은 국내 경제의 역동성 저하를 불러올 것이며, 제조업의 성숙과 고도화 속에 철강 수요는 이미 장기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런 내수 둔화 속에서 인공지능과 디지털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 없이는 생존이 어렵고, 그린전환을 이뤄야만 국내외 규제 대응과 지원 확보가 가능하기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미래를 위한 투자는 분명히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수요 산업의 첨단화는 필연적으로 공급되는 철강 제품의 고강도화, 고기능화를 요구하기에 철강 제품의 고부가가치화 역시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방향이다.
다시 말해, 한국 철강산업은 지금 산업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정교한 발전 전략 수립과 투자 확대를 통해 대응한다면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성장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지만, 위기 대응의 적기를 놓친다면 대부분의 제품이 소수 업체에 의존하는 국내 시장 구조상 산업 기반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철강산업은 단순한 경제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산업이라는 점이 영국 의회가 마지막 남은 제철소의 통제권을 중국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비상입법까지 추진한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동안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던 일본제철은 현재 화려한 부활을 이루고 있다. 저수익 사업장을 축소하고 경쟁력 있는 부문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개편하면서 어려운 글로벌 산업환경 속에서도 견조한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기강판 등 고기술·고기능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탄소중립 기술 선도를 위한 투자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결국 US스틸 인수로 이어졌고, 점점 접근이 제한되고 있는 미국이라는 고수익 시장에서 일본의 위상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일본제철의 과감한 행보에는 안정적인 국내 수요도 한몫을 했다. 저가 수입재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환경 속에서 자생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안정적 수익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점은 주력산업의 원활한 산업 전환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향후 산업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철강처럼 기초 소재 산업은 관세 부과 시 광범위한 수요 산업의 비용 부담 증가, 무역 분쟁 촉발, 과잉 보호 논란 등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철강산업과 전통 주력산업이 처한 위기 상황에서는 국제사회가 국내산업 보호조치로 허용한 무역구제 제도는 국내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
▷ 산업연구원 이재윤 실장 / jlee177@kiet.re.kr
미국, Syracuse University, 경제학 박사, 2015
2015.07~현재: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부연구위원, 연구위원
2020.06~: 2023.8: 기상청 IPCC 국내대응 협의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