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첫 월급과 빨간 내복

황병성 칼럼 - 첫 월급과 빨간 내복

  • 철강
  • 승인 2025.10.2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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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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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선물하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도 그랬다. 1970년대 속옷은 효도의 상징이었다. 당시 내복은 고급 선물에 속했다. 이에 부모님들은 고급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하고자 눈에 띄는 색을 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염색 기술의 한계로 빨간색 제품이 먼저 나왔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부모님의 건강을 지켜주는 가장 손쉬운 선물이 빨간 내복이었다. 자식의 첫 월급 선물을 받고 흐뭇해하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도리를 조금이나마 한 것 같아 위안이 됐다.

부모가 되니 처지가 많이 바뀌었다. 변해 버린 세태가 놀라울 뿐이다. 빨간 내복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자식이 취직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感之德之)다. 그만큼 취직이 어려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과거 자식들의 순수했던 효심을 더는 기대하지 않는다. 직장에 들어가 사회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만 보아도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청년들이 고용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로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다. 이 심각한 상황을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지만 효율적인 대책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삼성과 포스코, 고려아연 등 대기업이 고용 확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만족할 수 없다. 구직자에 비해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취업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바늘구멍에 낙타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취업 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논리 비약일 수 있지만 이러한 비유는 고용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해된다. 9월 20대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15만 명 가까이 줄어 36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이 단편적인 실적만 봐도 청년들의 구직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실감한다.

청년들의 캄보디아 범죄단체 연루(連累)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 같은 사태의 발생 원인도 청년 일자리 부족 때문이다. 고수익 보장 해외 광고를 믿고 떠났던 청년들이 범죄단체에서 구금과 폭행을 당하는 피해자이자, 보이스피싱 등에 연루된 범죄 피의자 신분이 됐다. 해외 취업이라는 미끼가 청년들을 범죄의 소굴로 몰아넣은 것이다. 얼어붙은 국내 청년 고용 시장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일리가 있다. 당장 10년 앞의 목표를 세울 수 없는 절망감을 견디지 못해 쉽게 유혹에 넘어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고용률(63.7%)이 통계 작성 이래 9월 기준 최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대 취업자 수는 기록과 달랐다. 20∼60대에서 고용률이 감소한 것은 20대가 유일했다. 반면 60세 이상 고용률이 9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 같은 ‘고용 호조’ 통계가 나온 것은 노인 일자리가 빚어낸 착시현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농촌에 가 보면 파란 조끼를 입고 일하는 어르신이 많다. 하루 3시간 정도 하는 일이 고용에 잡히는 것은 국가가 ‘눈 가리고 아옹’ 한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촉발된 관세 전쟁이 전 세계로 확전 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불확실성은 기업 고용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늘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청년들이 캄보디아 범죄단체에 연루되는 일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노인 일자리 증가로 고용이 늘었다고 자화자찬하기보다 현실을 직시한 고용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 업계를 보면 구인난을 겪는 업체들이 많다. 청년들의 구직난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고용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정부가 대기업을 닦달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한시적 대책일뿐이다. 지금은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 고용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맞추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구직을 회피하는 3D 직종을 내버려 두면 산업의 뿌리가 송두리채 흔들릴 수 있다. 청년들이 이 직종을 찾게 하려면 국가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처럼 업체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은 직무유기로 비판받는다.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설렘이 숨어있다. 첫 월급을 받으며 설렜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노란 봉투 속에는 우수리 동전까지 들어있었다. 봉투는 얇았으나 마음만은 풍족했다. 동료들과 삼겹살로 다시 한 달을 기약하며 회포를 풀었고, 부모님 빨간 내복을 사면서 기분이 좋았다. 모두 첫 번째 하는 경험이었다. 필자에게는 대학교 4학년인 아들이 있다. 이 아이도 취업에 고민이 많은지 불면의 밤이 늘었다. 우리 주위에 자주 접하는 청년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국가의 노력밖에 없다. 부모가 되니 더욱 간절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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