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50 % 철강 관세와 유럽연합(EU)의 철강 저율관세할당(TRQ) 도입 검토 등 수출 장벽이 에베레스트산처럼 높아지고 있다. 이 산을 넘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우리가 기다린 것이 철강 고도화 정책이었다. 사공이 많은 우리 업계 대신 정부가 앞장서서 생존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애타게 기다렸다. 긴 뜸을 들인 끝에 드디어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이 발표됐다. 이 방안을 보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농부가 떠 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지 궁금하다.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미리 손보아야 현명한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문제 재발을 위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도 잘못된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소를 잃은 손해와 충격은 감수해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철강 고도화 정책이 이것을 닮았다. 철강산업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당연히 실행했어야 할 정책이 대부분이다. 하나하나 짚어보면 모든 정책이 그렇다. 모두가 우리 업계가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이 문제에 정부가 나 몰라라 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부랴부랴 정책을 마련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수입 철강재에 대한 품질검사증명서(MTC) 도입을 의무화하고 원산지와 품질 검증을 강화할 것을 수없이 촉구했다. 제3 국 및 보세구역을 통한 반덤핑 관세 회피를 차단하는 등 우회 덤핑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였다. 특히 우리 업계는 수요산업과 상생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조선, 가전, 건설산업은 이것을 외면했다. 질 좋은 국산 철강재를 두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수입재를 선호하는 모습이 기가 찼다. 그것을 정부가 나서서 조율해 줄 것을 바랐지만, 강건 너 불구경하듯 하다 이제야 상생 협력에 손을 대겠다고 한다.
철강산업 고도화에 책정한 예산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일개 회사의 연구개발비(R&D) 만도 못한 예산을 책정해 놓고 철강산업을 부흥시키겠다고 한다. 10개 특수탄소강에 2,000억 원을 지원해 현재 12% 수준인 특수강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높여 일본(17%)을 넘어서겠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독일(38%)과 경쟁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청사진을 그렸다. 과연 이 예산으로 일본을 넘어설 수 있고, 독일과 대등한 수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른 부문 예산도 마찬가지다. 탁상행정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저탄소 공정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도 그렇다. 예타를 통과한 수소환원제철 실증 기술개발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전기로 확대, 스크랩 수급 안정화, 저탄소 인증제도 도입 등을 통해 철강산업 ‘그린 전환’을 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정부가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업계가 지금 심혈을 기울이는 일이다. 무엇을 도와줄 것인지 구체성이 중요하다. 이것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그린 철강으로 전환은 우리 업계 최대 과제이다. 이 과제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정부 지원이 필요한 것은 이 부분이지만 언급이 없다.
설비 구조조정은 자율적 조정을 제시했다. 하지만 미진 시 정부의 조정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자율 조정자에게는 빵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는 정책이다. 정부의 ‘조정 기능’을 국가기업도 아닌 민간 기업에 적용하겠다는 것은 권한 남용이다. 물론 철강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해 설비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오롯이 업계 자율에 맡기는 것이 옳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개입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몇십 년을 공들인 사업을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강제하는 억울한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철강과 함께 50% 관세 폭탄을 맞은 알루미늄 업계 지원 방안이 없는 것은 더욱 아쉽다. 물론 철강에 국한한 정책이지만 이 문제 또한 외면할 수 없다.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업계를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도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집행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어느 한곳에 집중하는 지원이라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정책 취지에도 배치된다.
정부의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은 뜬구름 잡기이다. 구체성이 부족해서 실망스럽다. 예를 들어 수요산업에 국산 철강재 80% 이상 사용 의무화 등이 정책으로 제시된다면 우리 업계는 두 손을 들어 환영할 것이다. 미래를 위한 지원 정책도 중요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끌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책 보완이 뒤따라야 하고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업계도 정부만 바라보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업계 스스로 생존방안을 모색하고 실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철강산업 고도화는 우리 업계가 주체가 되어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