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종 비철·전략광물 생산하는 통합 제련소 구축
연 54만톤 생산…미국 내 핵심광물 공급망 자립 지원
고려아연이 미국 전쟁부(국방부)와 상무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대규모 통합 제련소를 건설하는 공동 투자에 나선다.
‘미국 제련소(U.S. Smelter)’로 명명된 이번 프로젝트는 설비투자(Capex) 기준 약 10조 원(66억 달러), 운용자금과 금융비용을 포함하면 총 11조 원(74억 달러) 규모이다.
세계 각국이 자원 무기화에 나서며 핵심광물 공급망의 특정 국가 의존도가 심화되는 가운데, 이번 제련소 건설은 미국의 공급망 자립 전략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려아연은 연간 약 110만 톤의 원료를 처리해 총 54만 톤 규모의 최종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며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과 상업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생산 품목은 아연, 연, 동 등 산업용 기초금속과 금·은 등의 귀금속을 포함해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카드뮴, 팔라듐, 갈륨, 게르마늄 등 총 13종의 비철금속 및 전략광물이다. 이 가운데 11종은 미국 내무부가 발표한 ‘2025년 최종 핵심광물 목록’에 포함된 광물로, 국가안보와 경제안보 차원에서 필수적이면서 공급 리스크가 높은 자원들이다. 이와 함께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황산도 생산된다.
제련소 건설은 2026년 부지 조성과 기반 공사를 시작으로 EPC 업체 선정과 주요 장비 발주가 이뤄지며, 2027년 착공해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가동은 아연, 연, 동 공정 순으로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고려아연은 단일 제련소 기준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갖춘 울산 온산제련소를 모델로 삼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과 최적화된 공정, 최신 제어 시스템을 적용한 약 65만㎡ 규모의 통합 제련소를 구축할 계획이다.
입지는 테네시주 클락스빌의 니어스타 제련소 부지로, 지반과 배수, 지하수 등 제련소 운영에 필요한 조건이 우수하고 물류 접근성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미국 내 유일한 아연 제련소가 약 50년간 운영돼 온 지역으로, 아연 공정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을 고용 승계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고려아연은 이러한 인프라 활용을 위해 니어스타 클락스빌 제련소 인수에 대해서도 이미 합의에 이른 상태다. 또한, 전력 공급 단가가 타 지역 대비 낮아 원가 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며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각종 지원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이번 미국 제련소 건설은 고려아연이 세계 최대 핵심광물 수요처 중 하나인 북미에 전략 거점을 구축함으로써 사업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투자와 규제, 정책 예측성이 높은 미국에서 생산 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지정학적 리스크, 수출 규제, 물류 차질 등 글로벌 불확실성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고, 현지 원료와 스크랩 소싱을 통해 공급망 대응력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AI), 반도체, 방위산업 등의 성장으로 기초금속과 전략광물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노후화와 폐쇄로 인해 제련·정련 시설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인듐과 갈륨 등 일부 핵심광물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는 미국 정부의 공급망 자립과 경제안보 강화를 위한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재원 조달 역시 장기적 전략 파트너십을 전제로 설계됐다. 총 11조 원 규모의 투자 가운데, 미국 전쟁부와 투자자들이 함께 조성한 21억5,000만 달러(약 3조2,000억 원)가 우선 투입되며 고려아연은 이를 기반으로 현지 법인을 설립해 제련소 건설과 운영을 총괄한다. 미 상무부는 CHIPS법에 따라 미국산 장비 조달 등을 목적으로 2억1,000만 달러(약 3,100억 원)를 추가 지원한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테네시에서 추진되는 고려아연의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이라며 “항공우주·국방,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자동차, 산업 전반과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13종의 핵심·전략 광물을 대규모로 국내에서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미국이 고려아연의 생산 확대분 중 일부에 대해 우선적 매수권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스티븐 파인버그 미 전쟁부 부장관도 “이번 투자는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미국 내 아연 제련소와 핵심광물 가공 시설을 건설하는 결정으로, 지난 50년간의 제련 산업 쇠퇴를 되돌리는 전환점”이라며 “75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병목 없는 전략광물 공급을 가능하게 하는 전력 증폭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고려아연은 온산제련소에서 축적한 세계 최고 수준의 비철금속 제련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미국 제련소에 그대로 적용하고 핵심 인력을 조기 파견해 초기 운영 안정성과 기술 리스크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복합 원료 처리와 통합 공정을 통한 높은 금속 회수율로 세계적 경쟁력을 입증해 온 경험에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지면서, 이번 미국 통합제련소는 성공적인 건설과 장기적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미국 내 통합제련소 건설을 계기로 항공우주와 방위산업에 필수적인 핵심광물을 공급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며 “한미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현재의 글로벌 정세와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맞물린 지금이 미국 진출의 최적 시기”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