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열린 철강업계 신년인사회에서 산업통상부 문신학 차관의 격려사는 현재 한국 철강산업이 직면한 성숙기 산업의 구조적 한계와 글로벌 통상 질서의 변화라는 이중고를 어떻게 정면 돌파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담아 냈다.
공직의 첫 시작을 철강산업과 함께 한 문 차관의 발언은 “과거의 영광(범용재 중심의 양적 성장)에 머물지 말고,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혁신(고부가·저탄소 전환)에 동참하라”는 강력한 권고였다. 특히 IMF 시절의 경험을 언급한 것은 이번 구조조정이 그만큼 절박하고 근본적일 것임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들렸다.
그러면서 문 차관은 “정부가 비난을 받더라도 반드시 추진하겠다”며 정무직 공무원임에도 불구하고 업계에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다. 그러면서 “철강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정부의 의지를 다시 강조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수익성 없는 철강은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정부의 철강산업 정책 방향성은 철강을 단순히 하나의 산업이 아닌 ‘제조업을 지탱하는 경제 안보의 핵심 축’으로 규정하고, 과거의 방어적 태도에서 벗어나 체질 개선을 주도하겠다는 방침으로 읽힌다.
우선 가장 먼저 내세운 것이 공급 구조 최적화다. 특히 중국·인도 등 후발 주자와의 가격 경쟁이 어려운 저가 범용재 설비를 감축하고 과잉 품목의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지난해 제정된 K-스틸법을 통해 독일·일본의 사례처럼 특수강 및 저탄소 철강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재편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공세적 통상 정책으로의 전환도 추진한다. 미국·EU 등의 통상 압박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선제적이고 일부 공세적인 협상 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상반기 내 시행될 K-스틸법 법안을 통해 저탄소강 전환을 위한 금융·세제·R&D 지원의 근거 마련 및 속도감 있는 과제를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재확인했다.
과거 IMF 시절에 철강업계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었다. 당시 IMF 외환위기 전후로 발생한 한보철강과 삼미특수강의 부도로 촉발됐는데, 이들 기업의 부도는 당시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차입 경영(빚을 내어 확장하는 방식)’과 ‘정경유착’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국내 철강산업의 위기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산업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과거와 같은 양적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버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단위 생산성이 중요한 범용 강재 중심의 생산구조를 고부가가치 고급강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업들은 사업 포트폴리오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깊이있게 고민해야 한다. 수익성이 낮고 탄소 배출량이 많은 노후 범용재 설비에 대한 자발적 감축 및 가동 중단을 검토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차용 초고장력강, 해상풍력용 후판, 전기차 모터용 전기강판 등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특수강 분야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저탄소 생산체제로의 전환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주로 일부 일관제철 사업자에게 해당되기에 공급망 사슬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 제조·가공·유통기업들에 대한 솔루션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를 든든히 뒷받침해온 철강산업의 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바래서는 안된다. 철강 공급망 전체를 아우룰 수 있는 안정화, 강건화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긴밀한 ‘민관 원팀’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이 이전과는 달라진 상황이니 업계로서는 이러한 민관 협력의 틀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