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제강, 정직과 신뢰로 일군 세계 최대 선재 기업

고려제강, 정직과 신뢰로 일군 세계 최대 선재 기업

  • 철강
  • 승인 2011.07.2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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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차종혁 cha@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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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종가를 찾아서 - (1)고려제강

  고려제강(회장 홍영철)은 부산 망미동을 본점 소재지로 하는 세계 최대 2차 선재업체다. 1945년 9월 고려상사로 설립돼 1969년에 사명을 현재의 상호인 고려제강주식회사로 변경했다. 이후 1969년 고려상사와 용접봉 공장 설립, 1976년 고려열연 설립, 1989년 말레이지아 현지법인 설립, 1990년 중앙기술연구소 설립 등 성장을 지속했다. 1999년 미국 현지법인 공장을 가동한 이후에는 국내외 공장을 점차 넓혀가며 국내외 대표적인 강선업체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국내 8개의 계열회사와 해외 11개의 계열회사를 두고 있다.

 


  ◇창립자 홍종열 명예회장, 와이어에 눈을 뜨다

  고려제강 창립자인 석천 홍종열 명예회장은 1945년 해방과 함께 경영 인생을 시작했다. 1945년 9월 22일 ‘고려상사(高麗商社)’의 문을 열었다. 부산시 남포동 1가 65번지, 2층짜리 적산가옥을 얻어 수산물 수출과 수산업 자재 수입 및 도매업을 시작한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홍 명예회장은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제품에 주목했다. 고려상사에서 취급하던 각종 수산업 자재 중 가장 그의 시선을 가장 끈 제품이 바로 와이어로프. 국내 어획량이 늘면서 와이어로프의 수요 역시 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어업용 도구로서의 수요를 넘어 와이어로프가 지닌 잠재적 활용도를 발견했다. 국내 산업이 발전할수록 와이어로프의 시장성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내 산업기술로는 생산이 불가능해 거의 대부분 수입품이 사용되던 실정이었다.

  1955년 홍 명예회장은 와이어로프 국산화에 도전할 것을 결심했다. 기술 개발에 소요되는 자금과 시간이 만만치 않지만 일단 생산에 성공하면 큰 이익을 창출할 것임을 확신했다. 무역업을 하며 자금을 모으고, 와이어로프 제조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나갔다.

  일본 관련 업체들을 직접 방문해 설비와 원부자재 도입을 위한 교섭을 진행했고, 드디어 1960년 7월 일본 산쿄가네모노를 통해 하마나데코에 생산 설비를 발주했고, 쇼와제강으로부터 기술 협조를 약속받았다.

  ◇1961년 ‘고려제강소’ 설립  - 1961년 3월 와이어로프 시제품 첫 생산

  홍종열 명예회장은 1961년 1월 2일 고려제강소를 설립, 오랫동안 준비한 와이어로프 생산의 첫발을 내디뎠다. 부산시 동래구 명륜동 고려직물 공장 안의 250여평 공간을 전세내 시작한 것이다. 우선 첫 단계로 월산 50톤 규모의 와이어로프 연선을 시작했다.

  1961년 3월 마침내 와이어로프 시제품인 4호품(직경 12mm, 길이 200m)이 탄생했다. 고려제강소가 생산한 첫 제품이다. 첫 제품부터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란 띠 코끼리 표’의 신화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대한석탕공사와 준설공사, 전력공사 등은 고려제강소가 생산한 제품이 값싸고 품질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 기존에 구입해 쓰던 외국 제품을 거의 고려제강소의 와이어로프로 교체하기에 이르렀다. 전국 선주들 사이에서도 제품의 우수성은 입소문을 타면서 노란 띠 코끼리 표 와이어로프를 찾은 이들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홍 명예회장은 국내 시장에서의 호평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더욱 품질 향상에 매달렸다. 드디어 1962년 6월 제품이 선적돼 첫 수출길에 올랐다. ‘KISWIRE’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향해 전진하는 첫 걸음이었던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철강유통 전문 매거진 ‘스틸마켓(Steel Market)' 2011년 8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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