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국내 철강시장에 대해 크게 걱정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리고 있다.
우선 세계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다. 경기 침체는 철강 및 비철금속 수요 둔화로 이어져 철강금속산업이 활기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철강시장은 수요 정체에도 늘어난 공급자와 공급량 때문에 수급 균형이 깨지면서 그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기 순환적인 문제나 수급으로 인한 문제들은 일정 시점이 지나 경기가 회복되고 시장의 조정 기능에 의해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더욱 더 큰 문제가 우리 철강시장 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바로 시장 내 거래 당사자 간에 믿음이, 특히 가격과 관련한 신뢰 관계가 깨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주요 철강 제조업체들이 가격을 결정하면 유통업체들이나 최종 수요가들은 대체로 이를 차례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원료 가격이나 국제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철강 제품 가격도 조정, 발표됐고 시장에서는 이를 불가피한 결정으로 인정하곤 했다. 일종의 정찰제 비슷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고 가격 조정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감이 존재했다.
따라서 기준(Base) 가격이 발표되면 운반비와 가공비, 그리고 적정이윤이 포함돼 실제 거래가격이 거의 자동으로 형성됐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가격에 대한 불신은 극도로 증폭되고 있다. 최근 일부에서는 파는 쪽이나 사는 쪽 모두 적정한 가격에 사고 판 것인지조차 확신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불안한 구매자들은 과거와 같은 장기 신뢰 거래가 아니라 건건이 최저가 입찰을 통해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소위 “물량을 흔들기만 하면 훨씬 싼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말이 됐다. 이런 상황들이 빈발하다 보니 시장은 더욱 가격 중심으로만 움직이고 있으며 최소한의 규칙과 신뢰도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 실수요가들이 매년 요구하는 비용절감(CR, Cost Reduction)이 계속되면서 납품업체들은 저가 물량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고, 때마침 저가 수입 제품들이 국내 시장에 자리 잡는 촉매 역할을 했다는 설명도 나오고 있다.
중국산에 대한 가격 대응으로 수입이 줄어든 품목도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제조업체는 거의 이익 창출이 불가능하거나 일부 손해를 보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간에선 유통가공업계의 어려움도 더욱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돼서는 철강업계나 수요업계 모두 피해자요, 활로를 찾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국내 철강시장의 구조적 변화와 함께 현재와 같은 가격, 구매 방식이 굳어져서는 우리 철강산업과 관련산업의 미래는 결코 보장할 수 없다. 하루빨리 거래의 기준을 다시 정비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