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자식을 내 자식처럼 돌봐야
아파서 다 죽어가는 자식을 끝까지 보듬으며 살리려고 애쓰는 모정(母情)은 우리 경제 환경에서는 이제 더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아픈 아이를 정으로 보듬고 가기보다는 더 잘 키울 것 같은 집으로 입양을 보내는 것이 지금 우리 경제 현실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기른 자식이라도 말이다. 결국, 아픈 아이로 말미암은 공멸(共滅)보다는 매정하게 정을 끊음으로써 생존을 택하고 있다.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M&A 칼바람이 삭풍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다. 문어발식 확장의 대표 기업인 삼성이 자식 네 명을 한화로 입양 보내기 위한 빅딜을 진행하고 있다. 매물로 나오면 동네 구멍가게도 눈독을 들이던 대기업이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집안 쌀독은 품질 좋은 쌀로 가득한 데 말이다. 결국, 가득 찬 쌀을 조금이라도 축내지 않고자 보탬이 덜 되는 아이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 철강업계도 마찬가지다. 포스코 그룹이 포스코특수강을 세아 그룹으로 입양 보내려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또한 삼성과 같은 입장이다. 적자를 내지 않는 기업을 입양 보내는 이유를 포스코는 본원경쟁력 강화에 두고 있다. 권오준 회장은 “우리의 역량과 미래 비전에 부합하지 않는 신성장 아이템과 비핵심 사업은 과감히 중단할 것”이라며 ‘선택과 집중’에 그룹의 명운(命運)을 걸고 있다. 기업의 영원한 생존을 위해 죽지 않은 아픔은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동병상련인 유니온스틸이 동국제강과 합병한 것은 그나마 아픔이 덜하다. 오히려 어머니 집에 들어가는 까닭에 서러움은 많이 반감된다. 하지만 50년 이상 전통을 가진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패를 내려야 하는 운명 앞에 선 종사자들의 씁쓸함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동우회 회원들이 송년회에서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가 없어진다는 아쉬움에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는 이야기도 안타까움으로 들린다.
아파서 죽음에 직면한 아이를 입양한 기업도 있다. 현대제철 등 현대자동차그룹 3사의 동부특수강 인수가 그 예이다. 이 때문에 현대제철은 특수강 사업에 날개를 달게 됐다. 아파서 죽음에 직면했던 동부특수강에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현대제철도 남의 자식을 데리고 와 내 자식으로 입양시켰으니 더 잘 키워야 할 의무가 있다.
M&A의 광풍 앞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룹 생존을 위해 희생의 더 넓은 벌판으로 내몰린 종사자들의 처지이다. 평생을 부모님께 효도하며 행복하게 잘 살기를 꿈꾸었던 자식이 남의 집으로 입양가게 생겼으니 서러움은 크다. 그러니 입양하는 기업은 아픈 마음에 더 큰 못을 박지 말고 따뜻한 사랑으로 보듬어 주어야 한다. 아름다운 만남과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는 양자를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여 잘 보살피는 것만이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