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설립, 인천으로 이전…대형선박용실린더라이너 연산 2만톤
충남 예산이전 추진, 연산 3만6천톤 80%↑…20여개 인증서 취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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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제의 재건을 위해 출범한 뿌리뉴스는 지속적으로 우수한 뿌리기업과 뿌리기술인을 만나 뿌리산업을 알리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이는 정부가 뿌리산업 육성에 나선 지 올해로 5년째지만 동종 업계 종사자 가운데에서도 뿌리산업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평균 30.9%로 여전히 뿌리업종에 대한 홍보가 필요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에는 인천시 서구산업단지에 자리한 주조업체 주식회사 광희(회장 허경욱)를 찾았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와 골프장을 사이에 두고 경서동에 인천 서부일반산업단지가 위치해 있다. 이곳 산단에는 30여개의 주조 업체 등 모두 254개 제조업체가 들어섰다. 이중에서도 광희는 3,500여평의 터에 산단 중앙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2011년 (주)광희로 사명을 변경한 이 회사는 휴전 직전인 1953년 6월 서울 중구 광희동에서 광희주물제작소로 출범, 현재까지 70년 가까이 국내 주조 업계를 이끌었다. 광희는 이후 1957년 관내 신당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광희는 아시안게임과 인연이 깊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당시 정부의 도심 혐오시설 이전 방침으로 1986년 현재 위치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이어 2014년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으로 광희는 다시 한번 이전하게 되는 운명을 맞았다. 30여개 주물 업체가 모여 있는 서부산업단지에 대해 관내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민원 등으로 충남 예산으로 이전하게 된 것.
충남도와 예산군은 2009년 11월 이전을 수락하고, 2011년 6월 예산 고덕지구를 ‘예산신소재일반산업단지’를 조성했다. 이에 따라 광희 등 14개 주물 업체는 이곳 23만평의 부지로 이전을 추진했으나, 예산 군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이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지난해 중반 대법원이 예산 군민들이 제기한 상고를 기각, 법정 싸움이 마무리 되면서 서부산단 주물 공장의 예산군 이전이 탄력을 받았다.
다만, 주물 업종 간 공장 양도
·양수·임대를 금지한 산업단지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이들 업체는 아직도 이전하지 못하고 있다.
광희주물이 이전할 예산군 1만여평(건평 4,210평)의 땅이 아직 주인 없이 놀고 있는 셈. 광희가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면 생산량도 연산 3만6,00톤으로 80% 급증하게 된다.
이를 감안해 광희는 당분간 인천서부산단에서 사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광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스 용해로 2기(8톤,12톤)를 운영하고 있으며. 주조공장과 가공공장에서 사형주조로 대형선박용실린더라이너를 연산 2만톤 규모로 생산하고 있다.
이중 80% 정도가 두산중공업에 들어가고, 10%는 현대중공업, 나머지 10%는 중국 업체에 각각 공급된다.
광희는 2004년부터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까지 사상 최대인 24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최근 조선업 난조로 일감이 50% 이상 줄면서 2014년에는 96억원으로 매출이 크게 줄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89억원의 매출에 이어, 올해는 9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기에 광희주물의 이 같은 선방은 허 회장을 필두로 조영삼 대표이사 등 42명(외국인 12명)의 임직원들이 혼연일체의 노력에 따른 것으로 회사 측은 분석했다.
현재 광희는 주물소재의 세계적인 기준이라고 하는 스위스 W.C.H(2001년)와 독일 MAN B&W(1998년)의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아울러 두산엔진은 2003년과 2007년 광희의 제품을 최우수 엔진으로 선정했다.
이외에도 광희는 부품소재전문기업으로도 선정됐으며, IS0 9001:2000(1998년), ISO14001:2004(2013년) 등 1983년부터 모두 20여개의 인증서도 받았다.
이는 광희가 후처리(6개), 가공(7개), 기타(3개), 열처리(1개) 등 최첨단 설비와 함께 24개 원소를 검사할 수 있는 스펙트로미터 등 13개의 검사기를 갖춘데 따른 것이다.
조영삼 대표이사는 “광희는 ‘자전거 원리’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자전거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진다. 광희도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광희는 2009년 초 90억원을 출자(지분율 25%)해 삼영중공업을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