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방을 높여 수레를 높여야
문지방을 높여 수레를 높여야
  • 박진철 기자
  • 승인 2019.09.1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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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시대 초나라 사람들은 낮은 수레를 선호했다. 그러나 초 장왕은 낮은 수레를 높이고 싶었다. 전쟁에도 사용되는 수레의 높이가 낮을 경우 속도를 내거나 험한 길을 가는 데 불편하기 때문이다.

초나라 재상이었던 손숙오는 장왕에게 “법이 자주 바뀌면 백성들은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되므로 좋지 않습니다. 수레의 높이를 올리고 싶으시다면, 마을로 들어가는 문지방을 올리게 하십시오. 수레를 타는 사람들은 문지방을 지나면서 번거롭게 수레에서 내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레의 높이가 높아질 것입니다”라고 간언했다. 초 장왕은 이를 허락했고, 반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모두 타던 수레를 높이게 됐다.

손숙오의 이 고사는 백성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법 운영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손숙오는 이처럼 백성을 옭아매는 규제나 법령을 늘리기보다는, 꼭 순리에 따르는 정치를 펼쳐 춘추전국 시대 명재상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를 통해 전라남도 영암군 대불국가산업단지의 전봇대를 언급했다. 전봇대가 대형 트럭 이동에 방해된다는 기업들의 불만에도 탁상행정 때문에 해결이 요원하다는 것이었다. 이 발언 3일 뒤 전봇대가 뽑혔고, 전봇대는 MB 정부 규제 완화의 상징이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슷한 의미로 ‘손톱 밑 가시’를 내세우면서 규제 개혁을 약속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붉은 깃발’을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세기 말 영국에서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며 불필요한 규제 철폐 필요성을 강조했다.

‘붉은 깃발법’은 1865년 영국에서 제정돼 1896년까지 약 30년간 시행된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인 동시에 시대 착오적 규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로 인해 영국은 가장 먼저 자동차 산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구호는 달랐지만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정권들의 외침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철강업계를 뒤흔들었던 고로 블리더 파동에서 보는 것처럼, 정권의 규체 철폐 구호는 외침에만 그치는 듯하다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다행히 최근 제철소 고로 블리더의 개방을 허용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민관협의체(환경부, 업계, 전문가, 시민단체 참여)를 구성해 해외 사례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본 결과다.

이번 합의로 철강업계는 수조원의 손실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환경단체 민원에서 시작돼 철강업계에 2조원 이상의 피해를 발생시키는 고로 조업 정지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번 사태는 잘못된 규제와 법 제도의 적용이 얼마나 큰 사회적·경제적 혼란과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내 준 사례라고 하겠다.

정권들의 규제 철폐가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산업계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순리’에 따르는 정책이 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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