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욕심(慾心)을 내려놓으면 국가도 살고 회사도 산다

황병성 칼럼 - 욕심(慾心)을 내려놓으면 국가도 살고 회사도 산다

  • 컬럼(기고)
  • 승인 2020.02.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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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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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화음(不協和音)의 사전적인 의미는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충돌(衝突)이라고 정의한다. 현대는 욕망의 시대다.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충돌하고 분란을 일으킨다. 대표적인 곳이 정치권이다. 국회의원들은 국회에 들어가면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막상 국회에 입성하면 이 생각은 돌변한다. 협치는 없고 자기들만 잘났다고 소리친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여야 의 충돌이 그것이다. 

노사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 의견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갈등을 일으킨다. 노조는 회사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도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 한다. 근로자의 복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만 강요하는 사용자도 있다. 이 불협화음의 원인은 욕심(慾心)이다. 정작 본인들은 그것이 욕심인 줄 모른다. 자신들의 행동은 선(善)이고 정의(正義)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직장이 있어야 근로자가 있고, 근로자가 있어야 회사가 존재한다. 이것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그 관계가 틀어진다면 결과는 뻔하다. 갈등을 잠재우려면 모든 것을 내려놓는 희생이 필요하다. 회사가 망하든 말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행동은 어리석다. 근로자들의 삶은 생각하지 않고 노동만 강요하는 행동도 어리석다. 그 근저에 있는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우선이다.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은 욕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모든 싸움의 발단은 ‘욕심과 오해’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욕심이 뭔가, 선입관이다. 욕심의 장벽을 내려놓으면 선입관이 없어진다. 그러면 상대방의 진심이 보인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방이 이해된다. 진심을 알아야만 진정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욕심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경영자가 사심이 없다는 것을 근로자들이 확인하는 순간 리더십에 힘이 실린다. 사장이 개인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를 위하는 사람이라고 인식될 때 신뢰는 더욱 깊어진다. 근로자를 바라보는 경영자의 생각도 바뀌는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욕심을 내려놓으면 많은 것을 살릴 수 있다. 나로 인해 불편해진 것을 되돌려 놓으면서 모두가 행복해진다.

욕심을 내려놓은 한 CEO가 있었다. LS(家) 오너 경영인 3세 LS예스코홀딩스 구본혁 부사장이 1월 10일 대표이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1월 1일 대표이사에 오른 지 열흘만이다. 구 부사장은 2014년 작고한 LS니꼬동제련 구자명 회장의 장남이다. 그는 LS가 3세 중 처음으로 CEO 자리에 올라 관심을 받았다. 구 부사장은 작은아버지인 LS예스코홀딩스 구자철 회장의 권유로 대표이사직을 수락했다. 

그러나 구 부사장은 고심 끝에 구자철 회장을 찾아가 “CEO란 무게가 만만치 않다. 1년이라도 더 많은 경험을 쌓았으면 한다. 아버지가 키운 회사에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더 잘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경영 수업을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이 많다. 모두 욕심 때문이다. 과욕(過慾)은 인간관계를 망칠뿐만 아니라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국가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과 회사를 위해 자신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사람의 본바탕은 선하다. 그것을 망치는 것이 욕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을 버려야 국가도 살고 회사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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