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특집) 집념의 외길 인생 석천 홍종열(下)
(추모특집) 집념의 외길 인생 석천 홍종열(下)
  • 황병성
  • 승인 2020.08.1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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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질 제일주의 경영과 노조 항구적 무파업 선언
 1980년대가 시작되면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로 국내 기업들의 활동도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석천은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하며 어려움을 극복했다. 1961년 고려제강소 설립 당시 생산능력이 월 50톤이었으나 20년이 흐른 1981년 월 생산 1만 톤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겉만 번지르르한 성장은 원치 않았다. 내실 경영에 무엇보다 신경을 썼다. 

더불어 설비 근대화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업체로 재탄생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했고, 1985년 비드와이어 공장 확장 공사에 착수했다.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선진국 수준의 비드와이어 생산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다. 이에 부응하는 설비 확충도 추진했다. 그는 품질과 생산성 모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를 원했다. 이러한 소망은 1986년 세계적 수준의 초현대식 설비를 갖춘 비드와이어 공장으로 실현됐다. 

품질 제일주의에 중점을 둔 그는 1987년 ‘품질 고급화’를 기업 운영 방침으로 표방했다. 이를 전사 차원에서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각 사업장은 품질 고급화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대대적인 품질 향상 노력에 돌입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같은 해 10월 고려제강은 품질관리 1등급 업체로 지정됐다. 생산에 대한 그의 관점이 ‘양(量)’보다 ‘질(質)’로 옮겨갔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노조의 항구적 무파업 선언도 그의 의지와 노력의 결실이었다. 1982년 6월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그는 이를 노사의 발전적인 관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로 삼았다. 노(勞)의 발전이 곧 사(使)의 발전이라는 경영방침을 양자가 함께 깨닫고, 서로의 입장에서 고민하는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1일 8시간 3교대 근무제를 단행하고, 직원들이 효과적으로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도록 각종 교육 및 연수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1987년 여름,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노동쟁의의 물결을 큰 진통 없이 비껴갈 수 있었다. 
 
■ 정직과 신뢰야말로 큰 재산
석천은 1988년 1월, 고려제강 대표이사직에 물러나 회장으로 취임한다. 1945년 고려상사를 설립한 후 한결같은 자세로 대한민국 특수선재 분야를 선도해 온 지 43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기업인이 추구해야 할 최대 목표는 기업발전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인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길 또한 기업발전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윤을 창출해 사회적 부를 증대시키는 것이야말로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의 소임 중 가장 기본이라는 믿음으로 그는 오직 한길만 걸어왔다. 

그가 일궈 놓은 기업은 세계 어떤 기업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위상을 갖추었다. 우리나라 특수선재 기술 발전사를 대변하는 기업으로서 각종 특수선재 제품을 생산했다. 관련 설비 및 원부자재 국산화를 가능하게 해 막대한 금액의 수입대체 효과도 거두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미약했던 기반시설을 극복하고 한국의 공업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  

“선재로써 세계 최고가 되겠다. 선재로써 국가에 공헌하겠다.”는 꿈을 이룬 것이다. 회사가 만들어 내는 제품은 세계 곳곳에서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았다. 선재 제품 연간 생산량 역시 세계 1, 2위를 다툴 정도로 성장했다. 오직 한길만 고집한 그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다. 또한, 그가 지켜온 믿음과 삶의 자취는 경영 이념이자 실천 방향으로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고 있음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자녀와 직원들에게 “정직과 신뢰야말로 큰 재산”이라는 말을 강조하곤 했다.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직한 태도와 행동이야말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기본자세이자 원칙임을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이다. 

또한 직원과의 신의, 사업 파트너와 신뢰 관계를 지키는 데 소홀함이 없었던 경영인으로 유명했다. 직원들과는 “월급날을 지킨다.”는 소박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약속을 평생 깨뜨리지 않았다. 사업 파트너와 한 약속도 반드시 지켰다. 이처럼 정직과 신뢰는 그가 일군 기업들의 든든한 재산으로 뿌리를 내렸다. 

■ 인재 양성에도 모범이 되다
“가정, 사회, 국가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그의 지론은 1986년 고려문화재단을 설립하는 기폭제가 됐다. 1987년부터 장학금 지급 사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쳤고, 우수한 후학들이 가정형편에 구애받지 않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한 그의 배려로 많은 장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평소 모교 사랑도 남달랐다. 1975년 개인 재산을 출연해 마산용마고(舊 마산상고)에 도서관 ‘홍덕관’을 지어 기부하는 등 모교 교육환경 개선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아울러 1990년부터 2002년까지 인재 양성과 학문 발전을 위해 ‘홍덕석좌기금’을 조성해 포스텍 이학분야 석좌 교수들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 유명 인사가 본 석천
“30여 년 전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우리 두 사람은 세계적 명성을 지닌 사업의 발전을 위해 과감한 동맹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 경제의 붐을 전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시장 공략을 위해 국제적 사업체와 협력하는 한국인도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때, 홍 명예회장은 진정 글로벌 경영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용기와 훈련, 그리고 인력 개발 등을 통해 고품질로 인정받고 고객들로부터 호평받는 사업을 이룩했습니다.”(Joseph Kinsch, 룩셈부르크 前 ArcelorMittal Chairman)

“고려제강그룹의 경영이념으로 뿌리내린 창의, 신뢰, 인내, 내실 중에서 특히 ‘신뢰’와 ‘인내’는 창업자의 인간적 자질과 강한 신념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신의의 중요성을 일평생 보여주고, 암울한 시대에도 인내의 도를 지키며 꿋꿋하게 걸어온 그의 행적은 일생을 지탱해온 삶의 원칙과 신념을 대변하고 있습니다.”(前 포스코 이구택 회장)
 

1995년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유공자를 시상하며 격려하는 고(故) 석천 홍종열 명예회장.
1995년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유공자를 시상하며 격려하는 고(故) 석천 홍종열 명예회장.

■ 후대에서 본받아야 할 솔선수범한 삶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 대부분은 일로 채워졌다. 또한 그는 평생 인재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특히 한번 몸담은 일터가 평생 자신이 지켜야 할 보금자리라는 믿음을 주는 것을 중요시했다. 믿음을 토대로 하는 관계에서는 진심이 통하기 마련이다. 그가 지켜온 인재 정책의 원칙이 있었다. 먼저 솔선수범해 진심으로 따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공장을 돌아보며 기계를 챙기고, 검소함을 솔선해 실천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에도, 수영공장에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그가 걸었던 묵묵한 걸음을 직원들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고 회상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고 한탄한다. 나이 값을 하지 못하는 어른이 많다는 의미다. 석천 홍종열 명예회장의 삶을 따라가면서 맡은 훈훈한 삶의 향기는 오래도록 가슴에 가득하였다. 모두가 공경할만한 모범적인 삶을 살다 가셨기에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가 두고두고 본받아야 할 자세이고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어른을 다시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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