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강사와 ‘퇴고’의 미학
제강사와 ‘퇴고’의 미학
  • 박진철 기자
  • 승인 2021.04.19 0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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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스크랩 업계 취재를 다니면서 가장 기자가 놀랐던 일은 철스크랩 업체들의 야적장이나 계근대를 비추고 있는 시시티브이(CCTV)들 중 일부가 제강사에서 설치한 것들이라는 점이었다. 더구나 이를 제강사에서 직접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남의 집 안마당을 들여다보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 무례한 일인가. 제강사들은 이를 불법 고의 혼적을 감시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방통차에 달린 GPS도 이러한 역할을 한다. 

제강사 입장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고의 혼적 등을 막아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그리고 제강사들은 이와 관련해 시시티브이를 설치한 업체들에 운송료 보조 등 다양한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취지와 인센티브를 차치하고서, 남의 집 안마당을 손금 보듯 들여다보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놀랍고 무례한 일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글 다듬기’와 관련한 고사성어에 ‘퇴고(推敲)’가 있다. 당나라 때 가도(賈島)라는 시인이 길을 가면서 시를 짓다가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두드린다’는 뜻의 ‘고(鼓)’ 자를 쓸지 ‘민다’는 뜻의 ‘퇴(推)’ 자를 쓸지 고민에 빠졌다. 가도는 두 글자를 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그만 한유(韓愈)라는 고관대작의 행차와 마주쳐서도 예를 갖추지 못했다.
 
한유는 유명한 문장가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한유는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민다’는 뜻의 ‘퇴’보다 ‘두드린다’는 뜻의 ‘고’가 좋겠군”이라고 답을 내렸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문학적 사귐을 이어나갔다. 

이때 가도가 지은 시는 인가가 드문 산골에서 한 스님이 달빛 아래 사립문을 두드리는 장면을 담았다. 바로 여기서 사립문을 ‘두드릴지’, ‘밀지’를 놓고 시인은 고민에 빠졌다. 

문을 미는 것은 익숙한 곳에 드나드는 느낌이다. 자기 집이라면 당연히 문을 밀 것이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이 집이 자기 집이나 절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나가는 스님이 하루 묵을 곳을 찾고 있거나,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느낌이다. 조용한 산골과 떠돌고 있는 스님의 정취도 더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유는 이러한 뜻에서 문을 밀지 말고 두드리는 것으로 시를 마무리하라고 한 듯하다. 

우리나라의 문고리와 비슷한 유럽의 ‘도어 노커(Door Knocker)’는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됐다. 그리스인들은 다른 사람의 집을 함부로 드나드는 걸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약속된 방문조차 그냥 들어가지 않고 꼭 문을 두들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위한 도어 노커를 문 앞에 달았다. 

제강사들이 힘의 우위나 갑을 관계로 철스크랩 업계를 대하기보다 서로 간의 예의를 지켜야 하는 파트너로서 철스크랩 업계를 바라본다면, 문을 밀지 두드릴지, 시시티브이를 달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답은 자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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