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조선용 후판과 국산품 애용운동

황병성 칼럼 - 조선용 후판과 국산품 애용운동

  • 철강
  • 승인 2024.02.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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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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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가난한 시절 ‘국산품애용운동(國産品愛用運動)’이 생활이던 때가 있었다. 수입품을 쓰지 말고 국산품을 사용해 경제를 살려보자는 취지에서이다. 이에 국민들은 수입품을 쓰는 것을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여기며 국산품 사용을 일반화했다. 사회적 계몽(啓蒙)이 큰 역할을 했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는 경제를 부흥시키기에는 한계가 따랐다. 그래서 기초적인 노력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국산품애용운동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가난한 나라의 치열한 몸부림이었고,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국민적 동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운동은 뿌리 깊은 역사성을 지닌다. ‘조선물산장려운동’이 그 모태(母胎)이다. 1922년 식민시대 연희전문학교 학생 50여 명이 조선물산을 장려해 자급자족 정신을 기르고 산업진흥을 도모하고 경제적 위기를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자작회(自作會)를 조직한다. 이 단체의 목표는 국민을 계몽해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해’ 만든 상품을 쓰고 수입상품을 배격하자는 것이었다. 운동의 초점은 첫째, 조선인은 일치해 조선품만 쓰고 수입품을 쓰지 말 것, 둘째, 조선인의 소용품은 급히 조선인의 손으로 제조하도록 할 것, 셋째, 조선인은 일치하여 토지를 저당하거나 매도하지 말고 매입하기를 힘쓸 것 등이었다.

운동의 구체적 목표의 하나로서 조선인이 먹고 입고 쓸 조선품을 생산·공급할 만한 영국의 길드식 대산업조합(大産業組合)을 만들어 전조선적 생산기관으로 만들 것을 제시했다. 이 운동에 대해 당시 ‘동아일보’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일본의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이 소비에 동맹함으로써 생산의 발달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작회는 서대문에 작은 상점을 열고 국산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한편 강연회도 열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진주·무안·의령 등 지방에서도 지회가 결성되며 호응이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방해를 견뎌낼 수 없었다. 그리고 운동 자체가 가진 한계성 등으로 1924년부터 쇠퇴했다.

1990년대는 ‘과소비 추방 범국민운동’이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때는 수입품이 범람하던 시절이었다. 소비 주체는 젊은이들이었다. 외제 청바지, 가방, 신발 등은 유행에 민감했던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학생 신분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이에 모두가 유행의 선두 주자가 되기를 원했다. 외제품이 최고 수단이었다. 결국 부모님의 지갑이 희생양이 됐다. 부모 세대가 성취한 부를 바탕으로 물질적 풍요를 누렸던 오렌지족들은 명품 옷, 외제차로 화려한 소비생활을 즐겼다. 그것을 막아선 것이 과소비 추방 운동이었다. 궁극적인 것은 국산품 애용 독려에 그 목적이 있었다. 

글로벌화된 지금은 어떠한가. 추세인지 모르지만 국산품 애용 개념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됐다. 시장에는 국산품과 수입품 가리지 않고 소비자의 선택이 우선이다. 철강제품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수입산 철강재는 국내 시장으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모두가 수요가들이 원해서이다. 한 예를 들자면 후판의 수입이다. 2023년 국내로 수입된 후판은 199만 톤으로 전년 대비 17.7%나 증가했다. 중국산이 113만 3천 톤(56.4%)이었고, 일본산이 86만 3천 톤(43.4%)이었다. 전년 대비 중국산은 73.3% 증가했고 일본산은 15.5% 줄었다. 

국산도 넘쳐나는데 수입품이 쏟아져 들어오는 원인을 찾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조선사들이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맞이한 것이 그 이유다. 지금 조선사들은 3∼4년 치 이상의 일감을 쌓아두고 있다. 그야말로 실적 턴어라운드에 성공하며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조선용 후판을 공급하는 철강업체는 마냥 웃을 수 없다. 수입품에 밀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수입품과 국산 후판 가격은 톤 당 20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조선사들이 수입품을 찾는 이유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후판업체는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조선업계의 요청으로 설비를 증설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거를 잘 알고 있음에도 눈앞의 이익만을 쫓는 조선업계가 못마땅한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마음이다.

상도덕(商道德)은 상도(商道), 상도의(商道義)라고도 하며, 상업 활동 시 지켜야 하는, 혹은 상인이 지켜야 할 도리이다. 이를 지키지 않는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영혼을 팔았다고 한다. 물건을 제값에 파는 일, 약속한 물건을 제때 납품하는 일, 재료를 속이지 않는 일, 신용을 지키는 일, 상인의 윤리가 이에 해당된다. 지금 조선사들이 돈에 영혼을 팔지 않은지 묻고 싶다. 다반향초(茶半香初)라는 말이 있다. ‘차를 반쯤 마셨어도 향은 처음과 같다’라는 뜻이다. 차가 끝까지 같은 향을 유지하듯이 우리 스스로의 삶도 한결같은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늘 한결같은 원칙과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100년 전 조선물산장려운동의 향기가 다시 살아나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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