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곳곳에서 수요 둔화에 따른 공급 과잉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요국마다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실질적이고도 강력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입 후판에 대한 반덤핑 청원이 제기되고 조사 개시 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중국산 철강재 유입이 과다하지 않은 일본에서도 최근 반덤핑 제소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최근 타카히로 모리 일본제철 부회장은 다른 제철업체들과 함께 정부에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유럽 등 많은 국가들이 중국산 철강에 대한 자국 산업 보호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무분별한 수입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중국산 철강재가 일본으로 쏟아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미 북미와 유럽 국가들은 중국산 철강재에 대해 고강도 수입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 탄소규제 장벽까지 높아지면 사실상 중국산 철강재의 유입은 어려워지게 된다.
근래 들어서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중국산 철강재의 과잉 공급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최근 동남아철강협회(SEAISI)는 과잉 생산능력 문제를 지적하며 간접적으로 중국산 철강재 수입 문제를 거론했다.
현재 세계 철강시장의 공급과잉을 주도하는 지역은 중국과 아세안인데,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동남아에서도 역내 철강 생산능력을 꾸준히 확대하여 수입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가격 주도권을 갖고 있어서 역내 철강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점이 우려된다.
아세안은 지난 2022년에 7,810만 톤의 조강 생산 능력을 보유했는데,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감안하며 2030년에 1억 8,250만 톤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아세안 철강 수요는 7,510만 톤에 불과했고, 과거 가장 높았던 연 평균 7.3%의 수요 증가율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더라도 1억 8,250만 톤의 생산능력을 충족하는 데에는 약 12.6년이 필요하다.
이는 적어도 2035년까지 공급과잉 문제가 지속될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여기에 철강재 수입이 크게 줄지 않는다면 역내 과잉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잉 생산능력은 철강사들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가격 하락을 유인하여 결과적으로 산업 전체의 재정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과잉 생산을 통제하지 못하면 손실이 더 커져 사업이 중단되고 철강 부문에 대한 투자까지 감소할 수 있다.
또한 과잉 생산능력이 유지되면 해당 국가의 수출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데, 현재 중국의 상황이 그러하다. 올해 중국의 철강 수출은 다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중국의 최대 수출국이며 별다른 수입 규제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이 지속될수록 국내 철강산업의 공급망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도 무역규제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가정이 전제가 된 이야기지만 만약 지금처럼 값싼 중국산 제품의 유입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가격경쟁력이 취약한 철강제품은 모두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급망 사슬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수입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과 대응이 있어야 한다. 철강은 단순히 하나의 금속 소재 산업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뒷받침하는 경제안보 산업으로 보아야 한다.
최근 태국 철강업계가 자국 정부에 중국 철강업계의 투자 확대로 인한 자국 내 공급 과잉과 철강업계의 경영위기를 강조하며 중국 철강업체들에 대한 투자 규제를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SEAISI의 성명 발표를 계기로 아세안 국가들의 중국 철강업체에 대한 투자 규제와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수입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서도 수입 규제에 대해 더이상 소극적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