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조업의 고도성장을 견인해 온 철강산업은 국내 생산과 수출 순위에서 5위권에 자리할 정도로 여전히 주력산업의 지위에 있다.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철강 반제품을 생산하고 수출 규모도 네 번째로 많아 규모 면에서도 세계적 위상을 보이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정량 및 정성 분석을 통해 밸류체인 부문별 경쟁우위를 진단한 결과, 한국의 철강산업 종합 경쟁력은 세계 주요국 중 4위 수준으로 진단되었다. 종합 순위는 일본(92.8), 미국(90.5), 독일(89.7), 한국(85.7), 중국(84.7), 인도(75.6) 순으로 나타났다. 주요 공정 기술, 생산 규모, 가격 수용성 등에서 전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일본의 경쟁력이 주요 국가 중에서 가장 높았고 한국은 일본, 미국, 독일 대비 경쟁력 격차가 다소 존재하는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근소한 우위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됐다.
중간재 생산 부문에서 한국은 조강 생산 기술 수준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친환경 기술 수준과 친환경 전환 인프라 측면에서 열위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한국의 재생에너지 조달 여건, 높은 탄소 가격 등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린 철강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환경 인프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결과는 산업의 지속성장발전을 걱정하게끔 한다.
특히 중국에 비해서는 종합 경쟁력 평가에서 근소한 우위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상당한 위기의식을 갖게 한다. 우리 철강업계가 기술적으로 일본에 10년 뒤쳐지지만 중국에는 10년 앞서 있다고 자평한 것은 현 시점에서는 전혀 사실이 아닌 셈이다.
근소한 우위마저 조만간 역전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22년에 내세운 ‘철강산업 고품질 발전에 관한 지도의견’을 통해 중장기 철강산업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여러 내용 중에서 혁신능력 제고 방안의 하나로 내세운 것이 연구·개발(R&D)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2019년 기준 1.26%인 R&D 비중을 2025년까지 1.5%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핵심공정 80%와 생산설비 55%의 디지털 전환과 30개 이상의 스마트팩토리를 건설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현재 중국 철강사들은 정부의 철강산업 고품질 발전 방향에 맞춰 저탄소·친환경 기술 개발 강화, 로봇 활용 확대, 자율주행 기술 도입,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중국 철강산업이 질적 성장과 동시에 중국 철강사들의 경쟁력이 크게 제고되면서 우리 철강사들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격화, 철강재 수입 영향 등 큰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 최대 철강업체로 부상한 바오우강철그룹이 지난 2022년 3.24%였던 매출액 대비 R&D 비중을 2035년까지 5%로 높인다는 목표는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지난해 국내 철강사들의 R&D 비중은 세아창원특수강 1.30%, 포스코 1.01%, 현대제철 0.98% 상위 3개사가 1% 남짓이었고 이외 기업들은 평균 0.3%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격보다 쇼크에 가까웠다.
R&D가 미래의 기술과 품질 경쟁력, 신수요 확보를 위한 투자라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절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