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요한 상황인데도 선장이 배에서 내렸다. 휘몰아치는 폭풍우와 함께 파도가 거세게 쳤다. 선장이 없는 배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아직 가야할 항해는 멀기만 한데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린 선원들은 우왕좌왕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배에서 선장은 안전한 항해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있고 없음은 그 차이가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산으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선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선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능력 있는 선원 구하기는 더욱 어렵다.
선장을 잃고 난파 위기까지 몰렸던 한 협회가 기사회생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협회장 할 사람이 없어 해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기우(杞憂)가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한국철강자원협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한동안 ‘회장님을 구합니다.’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협회다. 그 절실함이 통했는지 구세주(救世主)가 나타난 모양이다. 난파 중인 배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승선한 내정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협회장이 되었다 하여 부귀영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희생과 봉사만 있을 뿐이다. 때로는 골치 아픈 일로 고뇌가 깊은 자리가 될 수 있다.
고철(古鐵)이 철스크랩이라는 명칭으로 바뀐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 고철 업은 가난하고 천대받던 사람들이 하는 직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고철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귀중한 자원으로 격상했다. 특히 철근을 만들고 형강을 만드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된다. 직업 인식도 바뀌었다. 밑바닥 신분이었던 넝마주이에서 재활용 업이라는 어엿한 직업으로 변신했다. 소상, 중상, 대상으로 구분되어 산 아래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그것이 큰 장점이다.
협회가 창설되면서 명칭을 바꾸었다. 위상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종사자들의 자긍심도 높아졌다. 친환경 시대를 맞아 철스크랩은 음지에서 양지로 나왔다. 탄소 중립이 글로벌 과제가 되면서 친환경 자원으로 부상했다. 덩달아 몸값도 껑충 뛰었다. 특히 전기로제강에서 투입 철원의 95% 이상이며 철강제품 제조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따라 안정적 공급은 전기로 제강업의 성장을 위해 중요한 과제가 됐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자원협회장 자리가 한동안 공석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회원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철스크랩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직 폐기물이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했다. 이에 따르는 제약이 많다. 철스크랩 업체는 법적으로 산업단지 입주가 가능하지만, 폐기물 처리 업체라는 인식 때문에 지역 주민 반발 등으로 현실적으로 입주가 쉽지 않다. 또 철강사에 원자재를 만들어 공급하는 제조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금 조달이 쉽지 않아 공장 신설이나 시설 확장에 어려움이 많다. 더 큰 문제는 가격 산정 체계다. 경제적 논리로 따지면 물건을 판매하는 곳에서 가격을 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러나 구매자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이상한 방식이 철스크랩 거래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철스크랩 업체가 당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황호정 신임 회장 내정자(인동스틸 대표)의 책임이 막중하다. 다행인 것은 신임 내정자가 취임 전 대구·부산지역 주요 회원사를 방문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회 운영과 관련한 협조를 요청하며 신규 사업에 대한 의견도 듣는다고 한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귀를 열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말로만 회원사를 위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작접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신임 내정자의 지금 행보는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다’는 속담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황호정 내정자는 12월 5일 정식 취임한다. 그는 회원사 예방에서 “현재 철스크랩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사 화합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협회가 처한 현실을 보면 그 말이 일리가 있다. 기능도 정상적으로 회복해야 한다.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급하다. 이것을 신임 회장이 해 낼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르네상스가 도래한 철스크랩 업을 더욱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자긍심 고취에도 더 힘써야 한다. 어느 외진 골목에서 힘겹게 고철을 수집하는 할아버지의 노고까지 헤아려 준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제 책임이 막중한 신임 회장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는 것은 회원들 몫이 됐다. 또다시 방관자가 되면 발전도 없고 미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