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올해도 ‘물 먹었다’

황병성 칼럼 - 올해도 ‘물 먹었다’

  • 철강
  • 승인 2024.12.1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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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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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인사철이다. 말단 직책에서부터 임원까지 정기인사가 발표되고 있다. 누군가는 승진하고 또 누군가는 ‘물 먹었다’는 소식을 들린다. 인생 사가 그러하듯이 직장도 희비(喜悲)의 연속이다. 고과가 좋은 사람은 승진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이처럼 인사에는 인정은 찾아볼 수 없고 매정함만이 존재한다. 특히 요즘 인사가 그렇다. 성과가 좋으면 선배를 뛰어넘는다. 연봉도 뛰어넘는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던 과거와는 다른 세상을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성과를 내지 못한 직원에 대한 채찍은 더욱 매섭다.

어린아이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고 부르던 광고가 생각난다. 옛날 광고였지만 당시 직장을 다니는 많은 아버지에게 큰 힘이 됐었다. 도살장처럼 여겨졌던 직장도 이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내어 출근했다. 그렇게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임원이 되고, 임원이 되기 위한 문턱에 서 있다. 물 흐르듯 순리대로 임원에 오른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임원 대상이 된 지 연거푸 고배를 마시다 마지막 기회까지 날린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에게는 이제 도저히 희망이 없는 것일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임원이라고 모든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만년 부장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 정년 연장이 공론화되고 있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목숨 줄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원은 정년연장을 보장 못하지만 평직원은 그렇지 않다. 그것을 법이 보장하고 있다. 임원은 임시직이다. 이 때문에 성과가 없으면 해고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이맘때면 임원들은 재계약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특히 성과를 내지 못한 임원은 ‘계약해지’ 통보를 받을까 불안에 떤다. 만년 부장이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말 김 아무개가 임원 승진을 통보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상무로 승진했다. 당사자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승진했다고 기뻐하는 그 이면에는 불안한 마음도 도사리고 있다. 비교적 50세 중반의 늦깎이 나이에 임원이 됐다. 왠지 께름칙하다. 자신의 나이에 임원으로 승진해 그 이듬해 계약해지 통보를 받는 선배를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길한 생각으로 엄습해 온다. 결과가 이렇다면 임원 승진이 꽃길이 아닌 저승길이다. 사실 이 방법은 대기업이 대 놓고 하는 명예퇴직의 한 꼼수이기도 하다.

만년 부장도 좋지만 저승길도 좋으니 임원이 되는 것은 직장인들의 꿈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한국CXO연구소가 상장사 매출액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직원들의 임원 승진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임원 반열에 오르려면 올해 기준 119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100대 기업 전체 직원 수는 84만 9,406명이다. 이 중 미등기 임원은 7,135명이다. 이에 올해 100대 기업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산술적인 확률은 119대 1, 즉 0.84%이다. 바늘구멍을 뚫어야 마침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처럼 어려운 경쟁을 뚫고 임원이 되었다면 기뻐할 일이다. 가문의 영광으로 축하 받을 경사다. 1%도 안 되는 경쟁을 뚫었으니 당연하다. 이 좋은 경사를 마다하는 직장인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일반 직원으로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니 정말 요지경 세상이다. 반면 단명해도 좋으니 임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 누구 생각이 옳은지는 나중에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이 생각들은 저마다 일리가 있다. 99명이 좋다고 하는데도 1명이 싫다는 생각을 존중하는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기 때문이다. 

올해 인사한 한 그룹 CEO의 평균 연령이 44.9세라고 한다. 인사의 특징을 직급과 연령에 관계없이 우수한 성과를 낸 인재들을 발탁했다고 한다. 임원 연령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나 때는’ 외치던 꼰대들이 발붙일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까마득한 후배가 앞질러 임원이 되고 CEO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오로지 성과만을 따지는 직장 문화가 몰 인간적일 수 있다. 모든 직원이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태가 그러하니  받아들이는 것이 대세다. 

근무 후 퇴근길 동료와 기울이는 대포 잔이 직장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즐거움은 꼰대들의 문화로 낙인찍혔다. 만년 부장 이 아무개도 이러한 꼰대 물을 다 빼지 못한 탓에 임원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그는 “나는 임원보다 평직원이 더 좋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은 다 안다. 아쉽게도 올해 그는 또다시 물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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