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 구조 통한 M&A 방어 사례 多...고려아연 상황과는 달라
상호출자 회피 및 강제 법리 저촉 등 기존 판례 대비 특수성 짙어
합법vs탈법, 대립 가운데 '결과' 중시 공정위...고의 탈법 인정할수도

고려아연 임시주총에 영풍.MBK측이 불복하며 고려아연을 검찰에 고발한 상황이다. 상호출자 위반 여부를 두고 양측이 첨예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기존 판례와 구별되는 해당 사건의 특수성으로 한치 앞 결과도 예측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달 23일 고려아연 임시주총에서 고려아연 측이 순환출자 카드를 통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을 두고 영풍.MBK가 법적 조정에 나서며,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영풍.MBK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임시주총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최윤범 회장을 포함, 주요 인사 4인을 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한 상황이다.
임시주총을 하루 앞둔 지난달 22일, 고려아연은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의 영풍 지분 매수를 통해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의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하며,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을 근거로 영풍의 의결권을 약 25.4% 제한했다. 상당부분의 의결권이 제한된 영풍은 당연하게도 고려아연 측 주요 안건 결의 및 추천인사 선임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의 순환출자 형성이 현행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상호출자 제한 조항을 꼼수로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상호출자 금지 조항을 면피하기 위해 고려아연이 직접 영풍의 주식을 매입하지 않고 고려아연 최씨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손자회사인 SMC를 이용해 영풍 발행주식을 매입한 탈법적 행위라는 주장이다.
또 임시주총에 있었던 상호주 제한에 관해서도 SMC가 국내가 아닌 호주 업체임에 더해 유한회사이므로 상호주 의결권 제한에 관한 상법 제369조 3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상법 제369조 3항의 문언에 따르면 상호주 의결권 제한은 국내법에 따라 설립된 ‘국내’ ‘주식회사’에 한정해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M&A 저지 대표적 방어수단 '순환출자'
순환출자는 기업 내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외부 M&A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러 차례 활용된 바 있다. 당장의 인수 합병 시도가 없는 상황에도 계열사를 여럿 보유한 대기업들은 계열사 간 상호출자를 통해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한 뒤 M&A 저항력 및 지배구조 강화를 도모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순환출자를 금지하게 되며, 신규 순환출자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 구조에도 지분 매각을 통한 해소 압력이 가해졌다.
다음은 M&A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순환출자가 이용된 대표 사례다.
1)한화그룹 사례 - 2014년 한화그룹은 자회사인 한화케미칼의 그룹 내 지배력을 확장시키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당시 한화그룹은 지배구조의 안정성향상과 M&A 방어를 목표로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화케미칼과 여러 계열사들 간의 상호출자 구조를 형성한 뒤 외부의 M&A 시도로부터 그룹 내부에서 자금 흐름을 조절하고, 외부로부터의 압박 완화를 통해 방어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후 2016년 공정위가 해당 순환출자 구조가 상호출자 금지 규정을 회피한 행위로 보고, 한화그룹에 대해 순환출자 해소를 명령했다. 이후 한화그룹은 지분 매각을 통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했다.
2)LG그룹 사례 - LG그룹 또한 LG상사와 LG화학 간에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외부에서 LG그룹 인수 시도를 방어하고자 했다. 이에 LG상사와 LG화학은 상호 간 지분을 보유하며,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고, 그룹의 경영권 강화를 도모했다. 최윤범 회장의 사례와 비슷하게 외부 M&A를 막고, 그룹의 오너가 경영권을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다.
한화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공정위는 LG그룹에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명령했고 LG그룹은 공정위 조치 이행에 나섰다.
3)SK그룹 사례 - SK그룹의 SK C&C와 SK텔레콤의 순환출자
SK그룹도 M&A 방어를 위해 SK C&C와 SK텔레콤 간의 순환출자 구조를 활용한 사례가 있다. SK C&C와 SK텔레콤은 서로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상호 지배력 강화를 통해 외부 M&A 시도에 대한 안전 장치를 구축했다. 위의 사례처럼 지배권 안정과 경영권 방어가 궁극적인 목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보았고, 공정위는 SK그룹에게 순환출자 해소 명령을 내렸다.

기존 판례와 괴리 보이는 고려아연 순환출자
이처럼 M&A 저지 및 경영권 강화의 수단으로 상호출자를 통한 순환출자 구조가 종종 형성되곤 했다. 하지만 사례에서 확인 할 수 있 듯 합병으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의도적인 순환출자 형성의 경우 공정위는 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판단, 해소 명령을 내리곤 했다.
이에 근거해 이번 고려아연 사례 역시 순환출자 해소 및 임시주총 결의사항 무효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고려아연의 경우 위 사례들과는 다른 몇 가지 특수성을 가진다. 우선 계열사 간 상호출자를 시행함으로써, 법에 정면으로 저촉됐던 위 사례들과 달리 고려아연은 손자회사인 SMC를 통해 순환출자를 형성함으로써, 상호출자 금지 조항에 위배되지는 않는다.
또 순환출자 구조를 바탕으로 지배 구조를 강화해 외부의 M&A를 저지하려한 기존 사례들과 달리, 고려아연은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해 M&A 시도 주체인 영풍이 상법에 위배되게 만듦으로써 영풍의 의결권을 약화시켰다는 점에 있다. 공정위 입장에서도 고려아연의 사례는 매우 특수한 사례인 것으로 보이며, 판결 결과 예측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비록 위 사례들처럼 명확한 불법에 해당하지는 않으나, 손자회사를 통한 기습적인 주식 매수가 탈법적 행위로 보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보니 법적 조정이 행해질 가능성도 분명 존재한다. 비록 매입 주체인 SMC측은 해외 사업 축소, 분할 매각 등의 기업 가치 훼손을 막고, 사업 운영의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사회 의결을 거친 사업적 판단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효과'를 중요시하는 공정위의 성격 상 고려아연이 고의적인 편법을 행했다고 판단할 수 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