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우리나라는 태풍이 오기 전 잔잔한 바다와 같다. 엄청난 태풍이 닥쳐올 것이라는 예보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본격화 됐다. 그의 안중에는 동맹(同盟)은 없다. 오로지 미국만 우선할 뿐이다. 마치 채무 변제를 강요하듯 거침없는 그의 정책에 세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의 첫 번째 채찍은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으로 향했다. 중국은 예견되었지만 캐나다와 멕시코에 부과한 25%의 관세는 의외라서 놀랍다. 다음이 누가 될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당사국들은 보복관세 운운하며 대응에 나설 채비지만 곧 닥칠 미증유가 불안하다.
특히 트럼프 정책의 불확실성은 어디를 틜지 모르는 공과 같다. 당장 부과할 것 같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가 한 달 유예된 것이 한 예이다. 두 나라가 불법 이민과 마약 단속을 위해 국경 경비를 강화하기로 약속하자 베푼 성의다. 이른바 트럼프 식 거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병도 주고 약도 주지만 궁극에는 자국 이익을 해치지 않는 것이 그의 거래 기술이다. 이것을 간파한 우리로서는 그의 협상전략을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철강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걸친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트럼프는 관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규정했다. 그야말로 관세 신봉자다. 관세를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실행에도 거침이 없다. 마치 일방 도로를 달리듯 막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이러다간 다 죽어”라며 트럼프의 관세전쟁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집단도 있다. 포퓰리즘에 기반 한 미국 중심주의가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임을 경고한다. 상대국 보복관세의 최대 피해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폭등하는 물가는 고스란히 자국 소비자의 피해가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동맹국에 대한 자비 없는 정책도 지탄한다. 우리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85만 노동자를 대변하는 미국 철강노조(USW)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USW는 오랫동안 고장 난 무역 시스템에 대한 체계적인 개혁을 요구해 왔지만, 캐나다와 같은 주요 동맹국을 공격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라고 성명서를 냈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트럼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그는 내일이 없는 것처럼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트럼프의 관세전쟁 앞에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다양한 먹잇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히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 삼을 것이 뻔하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약 557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였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할 당시는 지금보다 흑자 규모가 훨씬 작았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개정하는 압박 에 돌입한 바 있다. 이번에도 어떤 식으로든 조정하려 들 것이다. 우리나라를 ‘머니머신’이라고 비꼬며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던 1기 때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래서 안심할 수 없다.
더 큰 걱정은 안보와 직결된 문제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트럼프 하면 선입관처럼 떠오르는 것이 방위비 분담금이다. 이번에도 부담액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 앞서 한·미는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막바지인 지난해 10월 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타결했다. 2026년(1조 5,192억 원 부담)부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끝난 뒤인 2030년까지 적용되는 사실상 ‘알 박기’ 합의를 했다. 하지만 국가 간 약속도 쉽게 뒤집는 트럼프 앞에서 행정명령에 불과한 SMA의 지속성은 담보하기 어렵다. 그는 이미 “한국은 방위비로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원)를 지출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우리 발등에 진짜 불이 떨어졌다.
철강도 트럼프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관세가 US스틸(미 철강 기업)을 더 수익성 있고 가치 있는 회사로 만들어줄 것”(1월 6일)이라며 조만간 철강에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처럼 트럼프의 재등장은 미국이 혈맹이 아니라 빛을 받으러 온 채권자처럼 부담이 크다. 더구나 구심점이 없는 우리의 탄핵 정국은 불안을 더 키운다. 이러한 상황일수록 조급하게 모든 패를 보여주어 약점이 잡혀서는 안 된다. 다른 국가의 협상 과정을 지켜보며 다양한 분석을 통해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하다.
트럼프의 보편관세 정책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미국의 ‘입맛’에 맞는 협상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의 해양패권을 막고자 우리 K 조선에 협력을 요청했다. 이것도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 자존심은 사치다. 과감히 버려야 할 때가 지금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든 것을 동원해야 생존을 보장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