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 상태의 한국 철강산업, 경쟁력 유지가 가능할까?
저가 수입재의 시장 잠식, 생산량 감소와 수익성 악화…고용 축소와 협력업체 줄도산까지
저가 수입재 확산이 국가 기간산업을 위협하는 이유
반덤핑 제소, 국가 경쟁력 확보 위해 불가피
저가 철강 수입재 유입 증가로 국내 철강산업의 붕괴와 더 나아가 국가 산업기반의 경쟁력 약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철강산업의 근간을 보호하기 위해 반덤핑(AD) 관세 등 무역규제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기간산업 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는 점에서, 철강산업 경쟁력 확보와 국민 안전을 고려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 무방비 상태의 한국 철강산업, 경쟁력 유지가 가능할까?
철강업계에 따르면 세계 철강 시장은 중국 철강산업의 급성장 이후 지난 10여 년간 공급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 월드스틸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글로벌 공급과잉 물량은 약 5.5억 톤에서 5.9억 톤에 이른다. 특히 중국 철강산업의 급격한 성장으로 글로벌 시장은 구조적 변화를 맞이했으며, 일본 또한 자국 철강제품의 해외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쳐왔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적극적인 무역 규제를 통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섰지만,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내 철강업계와 경제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철강산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한국만이 무역장벽 없이 저가 수입재에 시장을 내주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미국은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철강산업을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보호 조치를 강화했다. EU 역시 세이프가드(Safeguard) 조치를 발효하며 자국 철강산업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에 따라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각) 외국에서 들여오는 철강, 알루미늄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포고문(Proclamation)에 서명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제 철강 시장에서 무역장벽이 더욱 견고해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규제가 미비한 한국 시장은 저가 수입재의 주요 유입 통로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저가 수입재 확산이 국가 기간산업을 위협하는 이유
저가 수입재의 무분별한 유입은 국가 산업 전체의 경쟁력과 연관된 사안이다. 철강산업은 자동차, 조선, 건설 등 다양한 산업군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산업으로, 경쟁력을 잃을 때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열연강판은 국내 제조업의 기초 소재로 활용되며, 품질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질 때 제품의 안전성과 내구성이 심각하게 저하될 수 있다. 건설 및 인프라 분야에서는 저가 수입재 사용으로 인해 국민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산 철강재의 경우, 품질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일부 제품은 국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과거 국내 건설현장에서 사용된 중국산 철근과 철강재가 강도 부족 문제를 일으켜 안전성을 위협한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또한 저가 수입재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경우, 국내 철강업체들은 생산량 감소와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고용 축소와 철강 관련 협력업체들의 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산업은 단순한 제조업을 넘어 수많은 중소기업과의 연계성을 가진 산업이기 때문에, 그 피해는 단순히 한두 개 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반덤핑 제소, 국가 경쟁력 확보 위해 불가피
이러한 상황에서 반덤핑 제소는 국내 철강산업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평가된다. 이미 세계 다수 국가는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무역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역시 국가 기간산업 보호를 위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반덤핑 제소를 통해 저가 수입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국내 철강업체들은 공정한 시장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산업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라며 “또한, 이는 단순히 철강업체 보호 차원을 넘어, 국내 제조업과 국민 안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인도, 터키, EU 등 주요 국가들은 적극적으로 반덤핑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그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반덤핑 제소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끌어내기도 했다.
2015년부터 중국산 H형강에 대한 무역 규제가 시행된 이후, 국내 H형강 시장은 점차 안정화되었으며, 불공정 거래 형태로 유입되던 저가 수입재의 비중이 대폭 감소했다. 이는 철강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 규제가 단기적인 대응책이 아닌, 장기적으로 국가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정책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 반덤핑 규제, 과연 최선의 해법인가?
다만, 철강업계 내부에서는 반덤핑 규제가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일부 철강업체들은 주요 해외 시장에 의존하고 있으며, 한국이 보호무역주의적 조치를 강화할 경우, 다른 국가에서도 보복성 무역장벽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결국 국내 철강기업들의 수출길을 좁히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반덤핑 규제는 수입산 열연강판을 원재료로 사용하는 국내 하공정 제조업체들의 비용 부담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자동차, 가전, 조선, 건설업 등 다양한 산업에서 열연강판을 원자재로 사용하며, 수입 규제가 강화되면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여 이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결국, 철강업계 보호를 위한 반덤핑 조치가 국내 제조업 전반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 철강산업 보호 없이 국가 경제 지속 가능할까?
그럼에도 철강산업 보호는 국가 경제와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저가 수입재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이를 방치할 경우, 철강업계뿐만 아니라 연관 산업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금 대한민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라며 “철강산업 보호를 위한 적극적 대응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무방비 상태로 시장을 개방한 채 국내 산업이 위축되는 것을 방치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관계자는 “반덤핑 제소는 단순한 무역 규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철강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응책”이라며 “이제는 더욱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민의 안전을 확보해야 할 때다”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