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재의 국산 둔갑, 인증서 조작 의혹…무너지는 신뢰와 제조기반
정체불명의 '국산'…확인 어려운 출처
인증서·히트넘버도 도용 의심…“제조사는 서류에만 존재”
“한국산이라 믿고 썼는데, 알고 보니 중국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국내 열교환기 튜브 시장에서 ‘국산’ 제품의 진위를 둘러싼 의심이 확산하고 있다.
철강업계 일각에선 “외형과 서류상으로는 완벽하지만, 실제 생산지는 다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원산지 표시(마킹)이 없거나, 시험성적서와 제조번호가 도용된 제품들이 유통되는 가운데 제품의 실제 출처와 품질을 둘러싼 신뢰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 정체불명의 ‘국산’…확인 어려운 출처
철강업계에 따르면 열교환기 튜브는 발전소, 석유화학, 가스설비 등 고온·고압 환경에서 사용되는 고위험 부품이다. 하지만 유통 현장에선 “국산이라지만 실제로는 중국에서 온 제품일 수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간다.
서울·경기권에 납품되는 대부분의 튜브 제품은 튜브 제조사가 몰려있는 부산권을 거쳐 올라오며, 정상적인 국산 생산라인을 거친 제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현장의 진단이다.

철강업계에서 지목하는 위장 유통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세관 신고 시 규격만 살짝 바꿔 들여오는 수법이다. 일례로 19.05mm 규격을 19.5mm 또는 20mm로 신고해 통관하는 식이다.
그 외 방법으로는 원산지 등을 표기하지 않은, 이른바 무(無)마킹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절단·검사만 진행하고 ‘국내 생산가공품’처럼 둔갑시키는 방식이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 마킹까지 마친 완제품을 수입한 뒤 국내에서 포장만 바꾸는 ‘포대갈이’도 성행하고 있다. 수입재 일부는 애초에 한국산 포장 상태로 위장해 중국에서 직송되기도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처럼 외형·서류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실제 생산지는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 인증서·히트넘버도 도용 의심…“제조사는 서류에만 존재”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밀시트(시험성적서)와 히트넘버(제강번호)가 다른 제품에 도용돼 사용되는 사례가 공공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독일 B사 소재의 히트넘버가 국내에서 가장 많이 도용되는 사례로 지목된다. 중국 현지에서 생산된 소재에 독일 B사의 히트넘버를 임의로 마킹한 뒤, 유럽산 원재료를 사용한 것처럼 위장해 유통하는 방식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 지역 가공사 대표는 “실제 제조공정은 없고, 포장·서류만 가공하는 업체가 제조사로 인증을 받고 납품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전 공정을 갖춘 제조사들은 소재조차 공급받지 못하거나 가격경쟁에서 밀려 생산을 중단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소재가 없으니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도 단가를 맞출 수 없다”는 말은 시장 전반의 자조로 번지고 있다.
위장 제품은 민간을 넘어 공공조달 시장까지 침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내의 한 소각장에는 정체가 불분명한 튜브 제품이 납품된 정황이 있으며, 표면상 국산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산일 수 있다는 의심이 업계 내부에서 나온다.
일부 지자체는 일본·유럽산 소재로 인발한 제품만 허용하는 시방서를 운영해 오히려 정상적인 완제품은 배제하고 위장 제품 유입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국내 시장에서는 중국산 기반 제품은 킬로그램당 2,000원 선에서 유통되고 있지만, 국산은 최소 3,200원 이상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직하게 만든 제품은 ‘너무 비싸다’며 외면받는 현실을 꼬집으며 “정직하게 만들면 손해만 보는 구조가 됐다”며 “산업의 신뢰 기반이 무너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가짜 국산의 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한국산이라더니 전부 중국산?”…열교환기 튜브, 위장 유통의 민낯
② “이젠 다 알아요, 한국은 가짜 만든 나라”…수출 신뢰 붕괴와 제조 기반의 침몰
③ “걸려도 또 한다”…가짜 국산, 막지 못하는 제도 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