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위장 적발돼도 영업 계속…벌금 내고 다시 수입
부처 간 단속 권한 분산…“책임지는 곳이 없다”
실질 제조 여부는 확인 어려워…제도 사각지대 여전
“걸려도 문제없다니까요. 벌금만 내면 끝이에요.”
철강재는 외형만으로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 열처리와 인발을 거친 열교환기 튜브는 외관상 국산과 수입산의 차이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유통 현장에서는 시험성적서, 제조사 정보, 마킹 등 ‘서류’에 의존해 제품을 판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서류들이 위조되거나 도용되기 쉽고, 실제로 적발돼도 제재는 형식에 그친다는 점이다. 단속 권한은 여러 부처로 흩어져 있고, 인증은 민간기관이 맡고 있어 사후 관리가 느슨하다. 형식적 검사와 과태료 중심의 제재 구조는 실질적 제동 장치가 되지 못한다.
철강업계에서는 “단속은 보여주기식일 뿐, 위장 유통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 잡혀도 계속되는 납품…무력한 단속 체계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관세청과 지자체 등 단속 기관은 간헐적으로 원산지 표시 위반, 시험성적서 위조, 제조 이력 허위 표기 등의 위반 행위를 적발하고 있지만, 실제 시장에선 적발 업체들이 여전히 납품을 지속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영남권 한 유통업체는 시험성적서 위조 혐의로 적발됐음에도 다른 업체 명의로 유사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속이 실질적 영업 중단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시장에서는 “걸려도 어차피 돌아온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시험성적서 위조나 히트넘버(제강번호) 도용 등은 법적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실제 제재는 과태료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제조사 인증이 취소되더라도 다른 법인 명의로 재등록하거나, 포장·서류만 바꿔 유통을 이어가는 구조도 흔하다.
중견 유통업체 관계자는 “벌금 몇백만 원 내면 끝인데, 한 번에 남기는 이익이 그보다 훨씬 크다 보니 굳이 멈출 이유가 없다”며 “걸려도 다시 하면 된다는 식”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실질 제조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제조사로 등록될 수 있는 현행 인증 제도는 위장 유통 구조를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제조설비를 갖추고 생산하려면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라며 “서류만 준비하면 제조사 인증을 받을 수 있는 현실이 문제”라고 말했다.
◇ 단속 권한은 제각각…감독은 사각지대
현행 구조는 단속 권한이 관세청, 산업부, 지자체, 조달청 등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어 효율적인 관리가 어렵다. 제품 수입 시점에는 관세청이 원산지를 검토하지만, 시험성적서 위조는 산업부 또는 인증기관의 관리 대상이다.
문제는 어떤 설비에서 어떤 방식으로 실제 제조됐는지를 공적으로 확인해 주는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현재는 민간 문서인 시험성적서와 마킹 정보에만 의존하는 구조로, 공공 차원의 제조 이력 통합 관리 시스템 또한 부재한 실정이다. 인증 기관 또한 대부분 민간기관이 맡고 있어, 인증 이후의 사후 점검이 느슨하다는 문제도 반복 지적된다.
철강업계는 지금의 구조가 정직하게 만드는 기업을 몰락시키고, 서류만 잘 꾸미는 업체를 살리는 시장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않는다.
“진짜로 만들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푸념이다. 실제 생산에는 킬로그램당 3,000원 이상이 들지만, 위조 서류만 갖춘 제품은 절반 가격에 납품돼도 제재받지 않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국내 제조 인프라는 점점 무너지고, 현장 생산 대신 ‘서류만 찍어내는 유통형 제조사’만 살아남고 있다는 냉소 섞인 평가가 나온다.
[가짜 국산의 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한국산이라더니 전부 중국산?”…열교환기 튜브, 위장 유통의 민낯
② “이젠 다 알아요, 한국은 가짜 만든 나라”…수출 신뢰 붕괴와 제조 기반의 침몰
③ “걸려도 또 한다”…가짜 국산, 막지 못하는 제도 허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