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자체가 줄어 설비를 돌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매달 임대료는 나가고, 납품처는 중국산으로 갈아탔다. 공장 유지가 의미가 없을 정도다”
얼마전 ‘철강도시가 흔들린다’는 기획기사를 위해 포항 현장을 취재한 본지 기자에게 무겁게 한숨을 쉬며 답한 한 가공업체 대표의 이야기다.
포항은 철강산업에 기반한 대표적인 단일 산업 도시다. 특히 포항제철소와 포항철강산업단지는 지역 경제, 나아가 한국 경제를 든든히 받치는 역할을 해왔다. 산업과 고용, 소비가 하나의 순환 구조로 묶여 있는 지역에서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 곧장 도시 전체가 공동화될 위험에 노출된다. 이는 더 이상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포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대한민국 산업 구조 전환의 실패가 도시 전체를 얼마나 쉽게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데 포항을 비롯한 철강도시들이 흔들리고 있다. 포항철강산단관리공단에 따르면, 입주업체 중 32개가 휴·폐업 상태다. 공단 내의 현대제철 포항2공장은 최근 무기한 휴업에 돌입했고, 포항1공장 중기사업부도 오는 11월 가동을 중단하고 내년 매각 절차를 밟는다. 중견 철강업체인 코스틸은 최근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여 포항산단 내 공장과 베트남 공장을 매각하며 제조업에서 손을 떼고 유통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300명 이상이 정리해고 됐다고 한다. 이외에 다른 업체들도 공장을 매각하려 한다는 소문이 업계 내에서 공공연하다. 하지만 공장을 매수하려는 움직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코스틸의 사례는 국내 철강 제조업 생태계가 구조적 전환점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연강선재는 소둔선, 철못, 울타리 등으로 가공되며 수많은 건축자재의 출발점이 되는 소재이다. 코스틸의 이탈은 제조업의 한 축이 흔들리는 일이자 현실적으로는 ‘소재의 중국 의존’이 급속히 심화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다.
연강선재뿐 아니라 냉간압조용 선재 시장도 심각한 위기다. 이미 몇몇 업체들이 매물로 나와 있는 가운데 대형 업체의 매각 추진 소문도 꾸준히 돌고 있다. 미국의 50% 수입관세 부과 소식은 수요 기반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선재를 비롯한 국내 철강업체들에게 강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철강 산업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연결된다. 최근 만난 민동준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현재 철강금속 업계가 큰 위기를 맞고 있지만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철강업계의 위기를 넘어서려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제조사들이 원료 계약 조건에서 단가 낮추고, 설비를 가혹하게 돌리는, 즉 항상 높은 가동률에 의한 가격 중심의 전략, 가성비 전략으로 보낸 10년의 대가가 지금 오늘의 위기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결국 포항을 비롯한 철강산업 중심지역에서는 산업 구조조정보다 구조 전환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단순히 공장을 닫고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고용과 지역경제를 지탱할 수 있는 신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물론 철강산업의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글로벌 공급과잉, 가격 경쟁 심화, 수요 감소 등 구조적 문제가 누적돼온 결과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의 산업 구조조정이 ‘전환 전략’ 없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 고부가가치 철강 기술 개발, 친환경 생산 방식으로의 전환 같은 계획이 부재한 구조조정은 철강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이끌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단기처방에 불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