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구리 이야기(上) - 역사와 현재

황병성 칼럼 - 구리 이야기(上) - 역사와 현재

  • 철강
  • 승인 2025.07.1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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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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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정확한 이름은 ‘세계에 빛을 비추는 횃불을 든 자유의 신상’이다. 이 여신상의 키는 그 밑 기단까지 포함하면 93m이다. 발밑에는 노예해방을 뜻하는 부서진 족쇄가 놓여 있다. 치켜든 오른손에는 횃불,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 날짜가 새겨진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이 자유의 여신상 고향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 파리다. 프랑스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의 작품으로 1876년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에 선물한 것이다.

이 여신상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중심 탑은 당시 많이 사용하던 연철로 1,350개 리브와 세로축을 연결해 만들었다. 그런 다음 구리판과 구리 리벳을 이용해 여신상 외피에 부착했다. 겉면은 300여 개 동판으로 되어 있으며 일일이 망치로 두드려 성형한 것이다. 제작 당시에는 붉은색이었으나 이후 산화 작용으로 지금의 푸른색이 되었다. 이 외에도 서구 바로크 양식에 잘 쓰이는 푸른 돔도 구리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국회의사당 지붕과 과거 경복궁 조선총독부 청사 지붕도 모두 구리로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처럼 구리는 조각(동상)을 만드는 데 유용한 재료로 쓰인다. 녹는점이 낮아 주조하기 쉽기 때문이다. 붉은색 구리는 공기 중에 노출된 후 수십 년이 지나도 이산화탄소와 물에 의해 산화되어 녹청이라는 녹이 생겨 빛깔이 아름답다. 이 녹청은 피막을 형성하고 나면 산화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후로는 물 등에 반응하지 않아서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올림픽에서 3등에게 주어지는 동메달 주재료도 구리다. 동전이나 메달에 쓰이는 ‘청동’도 거의 구리에 가깝다. 동메달 구리 함량이 무려 97%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구리는 전성·연성이 풍부해 얇은 판과 선 제조에 주로 쓰인다. 열과 전기전도율도 뛰어나 전선·전기기구 등에 다량 사용되고 있다. 다른 금속과 잘 융합하는 성질 때문에 청동(靑銅)·황동(黃銅) 등 각종 합금을 만들어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 밖의 용도는 동선(銅線)·동판(銅板), 각종 전기·전자제품, 인쇄회로 기판(基板) 재료 등으로 쓰인다. 청동과 특수합금의 각종 기계부품재료, 열교환기 동 튜브 등의 합금재료, 탄피·탄환의 군수품 재료, 건축·동상 재료 등으로 애용되고 있다.

구리의 또 다른 장점은 탁월한 향균성이다. 대형 병원에서 환자들의 손이 많이 닿는 엘리베이터 단추나 문손잡이에 구리 합금을 쓰거나 코팅을 많이 하는 이유다. 또 구리 합금인 청동으로 만든 유기에 밥을 담으면 잘 쉬지 않는다. 이를 미량동 작용(微量動, Oligodynamic effect)이라고 한다. 실제로 국내 실험에서 여름철 유기그릇에 담아 둔 밥이 상온에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냄새나는 운동화 안에 동전이나 구리그물을 넣는 것도 살균·탈취 효과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생활에서 자주 경험하지만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세계 경제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구리 가격도 출렁거린다. 특히 전쟁이 치열해지면 구리 가격이 올라간다. 전쟁에서 소비되는 탄피와 탄두를 감싸는 것이 구리 합금인 황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톤 당 1,30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고공행진이다. 국내 방산 업체 풍산의 최근 실적이 좋은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그래서 구리 거래량이 곧 전 세계 산업생산 경기지수로 활용된다. 경기선행지표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닥터 쿠퍼’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구리는 로봇과 기계 산업이 발전하면서 필수적인 재료로 인식되고 있다. 다양한 기계 부품과 로봇 센서, 모터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기계의 고성능 부품인 열교환기와 같은 장치에서 열전달 효율성을 높이며, 안정성과 작업 효율과 에너지 성능을 극대화한다. 최근에는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로봇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관련 구리 수요 또한 급증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구리 업계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수요가 늘었다고 콧노래만 부르고 있으면 안 된다. 수요 개발 노력과 각종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기회를 살린다. 

지금 국내 구리 시장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로 비상이 걸렸다. 투자 위축은 물론 수요에 악영향이 예상된다. 선제 대응이 중요해졌다. 정부의 대응책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고율 관세 부과 부당성을 알리고 관세를 낮추기 위한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수요 업체인 LS전선과 대한전선이 미국 안방에 생산시설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호랑이 잡으려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전략이 먹혀들기를 기대한다.

관세 부과 소문에 구리 가격이 올랐지만 정련 구리를 만들기 위한 광석(정광) 부족으로 제련수수료가 사상 초유의 ‘0달러’를 기록하며 제련업체들의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비가 와도 걱정이고 안 와도 걱정인 난감한 상황이 작금의 국내 구리 시장이다.
(다음 호는 ‘구리 산업의 미래’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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