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수년간 후판 생산능력을 급격히 확대해왔으며, 내수 부진에 따라 수출 물량을 공격적으로 늘려왔다.
한국은 이러한 중국산 저가 후판의 주요 수출 대상국 중 하나다. 특히 구조용·조선용 후판 중심 수입이 증가하면서 국내 철강사들의 출혈 경쟁이 가속화되며 반덤핑 규제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다.
지난해 제소 이후 오랜 기간 조사를 거쳐 최근 우리 정부가 중국산 후판에 대해 반덤핑(AD) 최종 판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7만 톤에 달했던 중국산 후판 수입에 강력한 제동장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판정 결과, 중국 수출업체들에게 27.91%에서 최대 34.10%에 이르는 반덤핑 관세를 4년 간 부과하키로 했다. 보무강철 등 9개 주요 수출업체는 한국 정부와 ‘가격 약속(Price Undertaking)’을 체결함으로써 관세를 피할 수 있게 했지만, 국내로의 저가 수입을 방어하기엔 충분해 보인다.
또한 무관세 수입이 가능한 비보세 물량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여 지난해 수입량(약 50만 톤)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중국 업체들은 최저 수출가격을 지키면서 제한된 쿼터 물량으로만 관세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에 조선소 전용으로 들여오는 보세물량(67.4만 톤)은 이번 반덤핑 규제에서 제외됐다. 조선업계의 원가 부담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되는데, 대형 조선사와 달리 보세창고를 보유하지 않은 중소형 조선소나 조선기자재 업체, 건설업체들에게는 역차별 논란을 남겼다.
반덤핑 규제에 이어 중국의 정책으로 인해 후판 등 철강재 가격 상승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최근 공업정보화부는 ‘2025~2026 철강산업 안정성장 작업계획’을 발표했는데, 구체적인 감산량이 제시되지 않았음에도 중국 내 철강 선물가격이 반등 움직임이 목격됐다.
감산 언급이 이전에도 많아서 실질적인 감산 의지에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단기적인 심리 회복에는 분명한 영향이 있다.
10월부터는 비증치세(非增值稅) 화물 수출에 대한 본격적인 단속 소식도 들린다.
이 조치는 증치세(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거나 허위 서류를 이용해 세금을 회피하며 수출하는 행위를 근절하는 데 목적이 있는데, 특히 철강 제품이 주요 단속 대상이다. 이른바 ‘마이단(买单) 수출’을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불법적인 탈세 및 편접 수출 방식이던 마이단 수출이 사라지면 중국 업체들은 증치세를 정상적으로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철강재 수출가격이 오르게 되고, 이는 그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인해 중국의 철강 수출이 줄어들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중국의 정책과 함께 반덤핑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적어도 국내 후판시장의 건전성이 회복될 계기가 마련됐다.
하지만 중국의 철강 생산 과잉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속과 규제가 느슨해지면 언제든 과거의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로선 국내 철강사들에게는 가격 상승 여력이 생긴 반면에 수요 업계는 원가 부담이 커질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철강산업과 수요산업은 2인3각과도 같은 관계다. 결코 혼자서만 앞으로 내달릴 수 없고 같은 호흡과 보폭, 리듬으로 움직여야 앞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동반성장의 틀을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