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란산 슬래브, 중국 후판에 스며들다”…제3국 경유한 은밀한 경로 (후판 속 숨은 제재 폭탄①)

[단독] “이란산 슬래브, 중국 후판에 스며들다”…제3국 경유한 은밀한 경로 (후판 속 숨은 제재 폭탄①)

  • 철강
  • 승인 2025.09.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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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이형원 기자 hwlee@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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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산 슬래브 연평균 70만~110만 톤 중국행
중국산 후판 반덤핑 조사 기간에도 저가 유입 지속

이란산 슬래브가 중국산 후판의 밑바탕에 스며들고 있다. 철강 반제품(슬래브)은 이미 미국의 대(對) 이란 제재 품목에 포함돼 있으며, 제3국이 연루돼도 2차 제재가 적용된다. 그럼에도 국제 제재의 그물망을 피해 오만·인도 등지를 경유한 흐름은 2022년 이후 매년 공식 통계에 잡혔다.

특히 한국 정부가 중국산 후판 덤핑 여부를 조사하던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 사이에도 이란산 반제품은 중국 항만을 찍고 들어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닌 제재 우회 구조라는 점에서 파장이 불가피하다.


◇ 중국 수입 통계가 드러낸 이란산 경로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2022~2024년 동안 중국은 매년 70만~110만 톤의 이란산 반제품(HS7218, 7207 코드 기준)을 공식 수입했다. 2023년만 놓고 보더라도 중국의 빌렛·슬래브 등 반제품 전체 수입량은 약 290만 톤이었고, 주요 공급국으로 오만·이란·인도가 나란히 명시됐다.

오만은 슬래브 생산 능력이 없는 국가임에도 ‘오만산’이라는 이름으로 수출이 기록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이란산이 오만 라벨을 달고 들어온 원산지 세탁”이라고 해석한다. 아르거스와 패스트마켓 등 해외 언론에 따르면 실제 현장에서는 이란산 물량이 오만을 거쳐 중국 항만에 도착한 뒤, 광동·절강·허베이·산둥 등지의 중견 압연라인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산 슬래브가 중국산 후판의 밑바탕에 스며들고 있다.

한국 무역위원회는 2023년 7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를 덤핑 사실 조사 기간으로 설정해 중국산 후판의 가격 행태를 들여다봤다. 아울러 국내 산업 피해 조사는 2021년 1월 1일부터 2024년 6월 30일까지로 잡아, 장기간 누적된 피해 여부까지 함께 검증했다.

동시에 중국은 같은 시기에도 이란산 반제품을 주요 공급국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즉, 국내에서 ‘덤핑 저가 공세’로 문제가 된 중국산 후판의 이면에는 이란산 슬래브 투입 가능성이 겹쳐 있었던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의 원가 구조가 한국·일본산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가격은 훨씬 싸게 들어왔다”라며 “그 배경에 이란산 저가 반제품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 제재망을 비웃는 경로


이란산 슬래브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방식은 석유와 유사하다. 선박의 AIS 신호를 끄거나 조작하고, 제3국을 경유해 선적서류를 세탁하는 식이다. 결제 역시 달러 대신 위안화나 이란 내 환전센터를 활용해 추적을 피한다.

석유는 ‘찻주전자(Teapot)’로 불리는 중국의 독립 정유소들이 주로 받아왔다. 철강 역시 남중국과 화북의 중견 재압연사들이 이란산 반제품을 흡수해 값싼 후판과 열연강판으로 다시 시장에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이후 중국의 공식 통계에는 매년 ‘이란’이 주요 공급국으로 기록됐다. 한국 정부가 중국산 후판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던 2023년 7월~2024년 6월 기간, 중국의 공식 통계에는 여전히 이란산 반제품 유입이 기록됐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의 저가 구조 이면에는 이란산 슬래브 투입 가능성이 겹쳐져 있다”라며 “이 물량이 한국 시장에 들어온 뒤 대미 수출 제품 등에 사용된다면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제재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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