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 자이지만…

내 코가 석 자이지만…

  • 철강
  • 승인 2025.09.2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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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병성 bshwang@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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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세계적 기업 테슬라와 손을 잡았다. 삼성전자도 세계적인 기업이지만 두 기업이 손을 잡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상호 이익에 공통 목표가 있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목적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핵심은 반도체이다. 반도체는 삼성전자와 TSMC가 글로벌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파운드리(foundry)를 갖고 있다. 쉽게 말하면 생산공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테슬라는 제품 설계만 하지 차량용 반도체 생산공장이 없다. 삼성전자와 손을 잡은 것은 위탁 생산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이에 2025년 하반기부터 삼성전자가 테슬라 개발 AI 반도체 칩을 생산한다고 한다. 이 칩은 2 나노미터(nm) 공정으로 생산할 예정이다. 이는 현재 세계에서 구현 가능한 가장 정교한 수준의 생산기술이다. 이런 고난도 생산기술을 삼성전자가 맡은 것은 그만큼 신뢰를 얻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2 나노기술 상용화는 큰 의미가 있다. 향후 TSMC와 경쟁에서 입지 확대가 기대된다. 퀄컴, 구글, 애플과 수주 협상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글로벌 반도체 흐름을 바꾸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삼성전자는 자체 칩도 생산하고 다른 기업 제품 위탁 생산도 한다. 반면 대만 TSMC는 오로지 위탁 생산만 가능하다. 이 회사는 세계 파운드리 시장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엔비디아, 애플,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 핵심 칩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AI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GPU 및 첨단 AI 칩 생산능력을 독점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인텔이 뒤쫓고 있지만 따라잡기가 버겁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만의 올해 수출이 전년 대비 63%나 증가했다. 반도체 호황이 경제 성장을 견인한 일등공신이다.

대만의 반도체가 대체불가가 된 것은 AI 시대 최대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AI 패러다임이 수요구조를 바꾸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AI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대만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 삼성전자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9.3%에 불과하다. TSMC와 비교할 수 없이 뒤떨어진다. 하지만 기대하는 바가 없지 않다. 2 나노 공정 수율 문제를 개선한 점이 희망적이다. 이 공정처럼 미세한 작업일수록 정상 제품 생산이 쉽지 않다. 테슬라와 계약은 이 문제를 해결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수주 확대를 기대할 수 있는 희소식이다.

대만 반도체는 자국 수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사실상 경제는 반도체로 고착되어 있다. 이에 반도체가 호황을 누리는 지금 경제성장이 놀랍지 않다. 이와 함께 우리의 자존심도 금이 가고 있다. 1인당 GDP 역전이 그렇다. 올해 대만의 GDP가 우리나라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우리 정부가 지난달 제시한 명목 GDP 성장률 전망치(3.2%)와 대만 통계청 최신 전망치를 토대로 비교한 결과다. 이 전망이 현실이 되면 한국은 2003년 1만 5,211달러로 대만(1만 4,041달러)을 제친 후 22년 만에 역전을 허용하는 것이다.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결과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 우리 반도체 수출도 대만 못지않다. 타 국가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대만은 되고 우리는 안되는 것이 있다. 정치가 그렇다. 어디든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한 예로 주 52시간 근무이다.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R&D 인력만이라도 52시간 근무를 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여당은 “예외가 없다”라고 못 박았다. 우사인 볼트처럼 뛰어도 부족한데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 반도체이다. 예외가 절실하지만 죽을 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실 우리 업계의 ‘코가 석 자’이다.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반도체산업은 철강·비철금속 산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나간다. 우리나라 산업 중 유일하게 잘 나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굳이 반도체를 걱정하는 것은 자존심이 무너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일본을 따라잡으려고 힘겹게 달려왔다. 대만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대만의 반도체 앞에 굴종(屈從)하는 비참한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다. GDP의 역전은 생각지도 않았다. 반도체가 운명을 갈랐다. 반도체 굴기는 반도체로 맞서서 이겨야 한다. 국가의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우리가 분발하지 않으면 GDP 4만 달러도 허황된 꿈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이 지금처럼 사사건건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면 희망은 없다. 대만을 다시 잡기는커녕 일본에도 역전당할 수 있다.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예외가 있는’ 근로기준법의 유연화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권 협조가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정치권 협조 없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실이 안타깝지만 포기할 수도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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