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하락 멈춘 뒤, 반덤핑·수요산업 부진 속 갈림길
국내 열연강판과 후판 유통가격이 9월 말까지 뚜렷한 반등 없이 보합세를 이어온 가운데 향후 가격 향방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추석을 기점으로 거래가 한산했지만, 10월 성수기를 앞두고 제조사 인상 정책과 수입재 흐름, 수요산업 회복 여부, 반덤핑 정책과 중국 경기까지 맞물리며 시장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철강업계는 이번 분기 흐름이 내년 가격 질서를 가늠할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 9개월 버틴 가격선…반덤핑 관세가 흐름 흔들어
국내 열연강판 유통가격은 3월 톤당 80만 원 초반선에서 출발해 6월 이후 80만 원 초중반선으로 올라섰다. 수입재는 톤당 70만 원대 초반까지 내려갔다가 9월 들어 70만 원 중후반선까지 회복했지만, 내외 가격 차는 여전히 크게 벌어졌다.
후판 가격은 같은 기간 톤당 90만 원 초반선에서 시작해 6월 90만 원대 중반 고점을 찍었고, 이후 90만 원 초반선을 유지하며 가격 방어 흐름을 이어갔다. 수입재는 80만 원 초중반 구간에 머물렀다. 종합하면 상반기 내림세 이후 6월 반등, 7~9월은 가격 지키기에 방점이 찍힌 구간이었다.

특히 정책 변수는 철강시장을 뒤흔들었다. 후판은 2월 예비판정에서 최대 38%대 관세율이 제시됐고, 8월 최종 판정에서 34% 수준으로 확정되며 일부 가격약속이 수용됐다. 열연강판은 9월 말부터 중국산과 일본산에 28~33%의 잠정 반덤핑관세가 부과되면서 수입 단가와 물량의 변동성이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반덤핑 판정으로 수입재가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다”며 “국산 제품의 지위는 높아졌지만, 대응재 확보 부담은 유통업체에 남았다”고 말했다.
◇ 성수기 앞둔 철강, 수요산업 부진에 시험대 오른다
9월 말 기준 열연은 80만 원 초중반선, 후판은 90만 원 초반선을 지켰다. 수입재는 열연이 70만 원 후반, 후판이 80만 원 중후반까지 회복했으나, 반덤핑 관세 적용 전 ‘막차효과’로 늘어난 물량이 소진되면 향후 유입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제조사 인상 기조는 이어지고 있으나, 거래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철강 수요의 최전선에 있는 전방 산업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건설 업계는 주택시장의 장기 침체와 SOC 발주 지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색이 겹치며 철강재 소비가 억눌리고 있다. 정부가 경기부양 예산을 확대했지만 착공 물량은 두 자릿수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양책이 나오더라도 공사비 급등과 미분양 부담으로 착공이 지연돼 수요 회복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조선업계는 LNG선과 자동차운반선(PCTC) 등 대형 선박 수주 잔고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들 선박에 투입될 후판 자재의 실제 소비는 수입산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국산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국내 대형 조선소들은 국산 강재 비중을 70% 안팎으로 유지하며 수급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지만, 단기 발주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산업은 친환경차와 전기차 생산 확대가 판재류 수요를 떠받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와 내수 소비 위축이 겹치며 성장세는 제한적이다. 업계에서는 “공급원가 부담과 고금리 여파로 시장 확대 여력이 크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내수 신규 투자와 신차 출시만으로는 수요 반등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계·플랜트 업종도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가 잇따르고 있으나, 실제 착공과 자재 발주는 수개월 이상 지연되고 있다. 글로벌 석유화학산업 부진 등 플랜트·에너지·정유 프로젝트 일정이 늦어지면서, 유통업계는 “수주가 발주로 전환돼야만 10월 이후 가격 반등에 실질적 동력이 붙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환경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세계철강협회는 올해 글로벌 철강 수요가 1%대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지만, 중국은 내수 부진과 부동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의 1~8월 조강 생산은 전년 대비 2%대 감소했고, 재고 누적 부담 속에 수출로 활로를 찾고 있다.
올해 중국 철강 수출은 전년 대비 한 자릿수 후반 증가가 예상된다. 다만 각국의 반덤핑·상계관세 확대가 이어지며 중국산의 우회 수출 리스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에 철강업계의 전망은 엇갈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0월 성수기에도 수요산업 업황 회복이 없다면 가격 반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수입 억제와 제조사 출하 축소가 겹치면 공급 측에서 가격 지지력이 형성될 수 있다”라며 “결국 10월 이후 열연·후판 가격 흐름은 국내외 반덤핑 정책, 중국의 수출 전략, 글로벌 경기 상황이라는 삼중 변수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이번 가격 분수령이 단순한 계절적 시황을 넘어, 내년 철강시장의 가격 질서를 예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