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정부는 공급과잉과 수출입 불균형, 내수 침체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정책 발표 이후 어떤 이는 뜬구름 잡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치부하거나 뻔한 내용이라 실질적 실행방안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고부가·저탄소·디지털 전환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산업 재편을 본격화하겠다는 선언이자 철강산업 구조 전환의 골든타임임을 명확히 한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철강 수입재 침투율은 31%까지 증가했으며, 내수는 5천만 톤 체제가 무너지기도 했다. 철강업계 영업이익률은 2021년 13.1%에서 2024년 2.7%로 급락하며 철강업계 체감경기도 최악 상황에 놓여 있다. 수요산업 침체 속에 설비는 노후화되고, 원가는 상승하면서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비단 국내만의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철강 232조 관세를 2025년 6월부터 50%로 인상하고, EU는 세이프가드 제도를 TRQ(저율관세할당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인도도 세이프가드를 시행하는 등 주요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이번 정책은 크게 다섯 가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첫째는 공급과잉 해소 방안이고, 둘째는 수출입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통상정책이다. 이외에 특수탄소강 등 고부가가치 제품 기술 개발과 인공지능(AI) 전환, 저탄소 경쟁력 확보, 산업 생태계 전반의 상생협력과 안전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 개혁은 단기적 성과보다는 중장기적 체질 개선에 방점이 찍혀 있긴 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는 예단하기 쉽지 않다. 특히 범용 철강재 중심으로 자발적 설비 감축을 유도하고 필요시 선제적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에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은행을 통한 압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 가지 중요한 산업 사례가 떠오른다. 바로 조선업의 재편과 부활이다. 한때 세계 시장을 주름잡던 우리 조선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 급감과 과잉 투자, 인건비 상승 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고강도 자산 조정을 통해 체질을 개선했고,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 수주로 방향을 전환했다. 정부 또한 정책금융 지원,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 지원 등을 통해 산업 회생에 적극 나섰다.
민관이 한 방향으로 조타를 함께 맞추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 결과, 조선업은 다시 세계 1위 경쟁력을 회복하며 새로운 도약기를 맞게 됐다. 미국의 관세 압박을 이겨낸 배경에는 조선업과 연계된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있기도 했다.
과거 조선업이 그러했듯 철강산업도 큰 위기에 봉착해 있지만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문제는 이 엄난한 파고를 넘기 위해 누가, 언제 키를 잡고 얼마만큼 함께 노를 젓느냐에 달렸다. 특히나 구조조정과 같은 민감한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기업들이 진정성 있는 자구노력으로 사업재편에 나선다면 정부는 신속히 사업재편계획을 승인하고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아울러 세제·연구개발 등 산업의 전방위 분야에서 제도적 지원을 다하고 금융권도 산업 전환의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하여 사업재편 선도기업들의 노력이 도미노처럼 확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논어에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란 말이 있다. ‘화려한 말을 늘어놓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 중 어진 이는 드물다’라는 뜻으로, 논어 1장과 20장에 두 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정부의 정책이 ‘교언영색’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