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가격제 조기 도입국일수록 CBAM 완충
국내 배출권 비용까지 합치면 총비용은 ‘상승 경로’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앞두고 유럽향 열연강판에 부과될 비용 구조가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산 열연강판은 경쟁국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부담 수준에 자리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국 탄소가격제와의 조정 메커니즘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이 2026년부터 CBAM을 본격 운영할 예정인 가운데 국가별 열연강판에 적용될 추가 부담이 제시됐다.
국제 조사기관 CRU가 산정한 추정치에 따르면 한국산 열연강판의 CBAM 부담은 톤당 22유로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인도 83유로 ▲베트남 68유로 ▲일본 50유로 ▲중국 41유로 등 주요 경쟁국 대비 낮은 구간에 속한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에서는 “부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지만, 이는 국내 배출권거래제 운영에 따른 차감 효과가 반영된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열연강판에 대한 CBAM 비용은 제품 내재 배출량과 EU 배출권거래제(ETS)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되며, 원산지국에서 이미 지불한 탄소비용 전액이 차감된다.
이 메커니즘으로 인해 국내 탄소가격제를 조기에 도입한 국가일수록 CBAM 부담이 낮아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한국이 낮은 부담 구간에 자리한 것도 탄소집약도 자체보다 배출권거래제(K-ETS) 운영에 따른 조정 효과가 크게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한국은 2015년부터 전국 단위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해 왔으며, 규제 범위는 국가 배출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배출권 가격은 EU ETS에 비해 낮지만, 의무 이행 대상이 폭넓고 무상할당 축소가 꾸준히 진행돼 왔다.
철강업계는 2026년 이후 산업계 할당량 감축 속도가 빨라지면서 배출권 구매 비용이 연간 수천억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CBAM 부담 완충 효과와 동시에 산업계의 구조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높은 부담이 산정된 국가들은 국내 탄소가격제가 부재하거나 초기 단계에 있다. 인도는 배출권거래제 기반을 마련했으나 아직 시범 운영 전 단계이고, 실질적 탄소가격이 형성되지 않았다. 베트남 역시 시범 ETS를 시작했지만 배출권을 전량 무상할당하고 있어 차감 요인이 제한적이다. 일본은 탄소세와 지역 ETS를 운영하나 가격 수준이 낮고, 국가 ETS의 의무화 전환도 초기 단계다.
이와 같은 격차는 단기적으로 EU 시장 진입 경쟁력에 차이를 만든다는 설명이 나온다. 한국은 낮은 부담으로 수출가격 조정 폭이 비교적 적을 것으로 보이지만, 인도·베트남·일본 등은 비용 반영의 폭이 훨씬 커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다만 한국의 낮은 부담이 곧바로 절대적 우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서 이미 상당한 배출권 부담을 지고 있어, EU 부담이 낮게 보일 뿐 총비용 구조에서는 이중 부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CBAM 평가 과정에서 핵심은 “탄소비용을 어디에서 지불할 것인가”라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EU는 수출국이 자체 탄소가격제를 강화할수록 CBAM 부담이 낮아지는 구조를 설계해, 결국 각국의 탄소정책 강화로 이어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국내 제도 운영으로 완충 효과를 확보했지만, 장기적으로는 EU ETS와의 가격 격차만큼 부담을 갖는 구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편 철강업계는 중장기적으로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공정 전환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국내 배출권 가격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기술 전환 속도에 따라 향후 CBAM 부담과 국내 탄소비용이 동시에 달라질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상대적 완충 효과가 나타나지만, 장기적으로는 저탄소 생산기술 도입 속도가 가격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