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 고도화案 이어 'K-스틸법' 하반기 본격 시행
친환경-고부가 전환 내세웠지만…실효성 지원 전무 비판
철근 설비 구조조정이 핵심…"석유화학처럼 로드맵 제시해야"
비철금속, 2030년까지 10대 전략광물 재자원화율 20% 목표
국내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와 탄소중립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해 11월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철강산업은 건설,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산업에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국가 기간산업이자 경제 안보를 뒷받침하는 핵심 산업이나 내수 침체 속 각국의 높아지는 무역 장벽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또한 탄소중립 전환에 대한 요구가 확대되고 있어 철강산업은 당장의 생존 방안 모색과 동시에 미래 녹색기술 전환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추진해야 하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
따라서 이번 특별법은 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산업 경쟁력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실행 가능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법안에 대해 실효성이 부족하단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철강업계가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며 요구해온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등은 배제한 채 법 절반이 미래 탈탄소 내용으로 채워졌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정이 철강업계의 어려움을 인지하고 해소하기 위해 나선 점은 긍정적이나 실질적인 단기 지원책이 전무하다"며 "이어지는 시행령에 전기요금 부담 완화 등 실효성 있는 내용들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공급과잉 대표 품목으로 지목된 철근은 설비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방침이나 정부가 자율 구조조정으로 유도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인 정부 개입 없이 실질적인 감산으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란 게 중론이다.
■ K-스틸법, 취지는 철강의 친환경-고부가 전환이지만
K-스틸법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통상 환경 악화, 탄소 규제 강화 등으로 위기에 놓인 국내 철강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치권에서도 철강산업의 위기를 특정 기업이나 지역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제조업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며 위기의식을 느낀 결과다. 특히 '선 통과 후 보완'으로 속도를 높이겠다는 접근은 정치적 현실과 산업의 시급성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도 지난해 11월 초 관계부처 합동으로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산업 구조 재편에 착수한 바 있다. 경쟁력이 떨어진 품목 설비 규모를 조정하고 고부가·저탄소 제품으로 전환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게 골자다.
올해 6월 17일부터 시행되는 K-스틸법의 유효기간은 2028년 12월 31일까지이며, 필요한 경우 만료 시점에 법 적용 기간을 3년 이내 범위에서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에는 산업통상부 장관이 5년 단위 기본 계획과 연간 실행 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의무화하면서 철강 산업의 친환경 전환과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담겼다.
우선 국무총리 소속의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저탄소 철강 기준과 인증 체계를 마련해 친환경 철강 생산을 뒷받침하도록 했다.
저탄소 철강 기술 개발과 실증 사업, 기업 간 협력 모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저탄소 철강 특구를 지정해 규제 완화와 인프라 지원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재생 철자원 가공 전문기업 육성, 전력·수소·용수 등 필수 인프라 공급망 확충, 각종 인허가와 환경규제 특례도 추진된다.
공급과잉 품목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포함됐다.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산업통상부 장관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사업재편 승인 기업 간 공동행위를 허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업결합의 경우도 심사 기간을 단축해 구조조정과 투자 결정을 신속히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 결국 철근 구조조정이 핵심…문제는 어떻게
정부가 공급과잉에 따른 대표적인 경쟁력 약화 품목으로 철근을 지목한 가운데 K-스틸법에서도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K-스틸법 제37조(기업결합 신고에 관한 특례)에 따르면 사업재편을 위한 기업결합의 경우 심사 기간을 기존 최대 120일에서 90일로 단축해 구조조정과 투자 결정을 신속히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같은 법 제38조(공동행위에 관한 특례)에 따라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산업통상부 장관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사업재편 승인 기업 간 공동행위를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K-스틸법 제37조, 38조가 이번 법안의 실질적 분수령이라고 진단했다.
권지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K-스틸법 제37조는 한계기업 구조조정과 인수 합병 속도를 높이는 장치"라며 "만성 공급과잉인 철근 시장 재편을 앞당기는 트리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제38조 역시 공급 과잉 상황에서 설비 가동률 조정과 감산 협의를 공정거래법상 담합 예외로 인정하는 법적 기반"이라며 "치킨게임식 점유율 경쟁을 끝내고 업계가 질서 있는 감산을 공식적으로 논의할 창구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꼽은 대표적인 생산조정 필요 품목도 철근이다. 철근은 수입재 침투율이 3% 수준으로 낮고 기업의 자발적 설비 조정 노력이 미진하다는 판단에서다. 범용재인 철근은 특히 중소 제강사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데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업계에서도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산업 구조 전환 방향에는 공감하나 정부가 자율 구조조정으로 유도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인 감산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설비 감축은 인력 구조조정과 노사 분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단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처럼 구체적인 추진 방향이 담긴 구조개편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이 철근 업계에 더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2년까지 성수기 기준 1천만톤대를 유지했던 국내 철근 수요는 본격적인 건설경기 침체로 2023년 900만톤 중반대로 꺾이더니 2024년 700만톤 후반대에 이어 지난해 600만톤 후반대까지 수직낙하했다.
국내 철근 생산능력이 연간 1,200만톤 수준임을 고려하면 지난해 가동률은 50%대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미 추가적인 자발적 감산은 불가하단 평가다.
정부가 이처럼 철근 생산설비 감축을 독려하고 나섰지만 건설 수요가 받쳐주지 않는 한 공급 과잉은 올해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철근 생산 설비 조정 계획은 업계와 상의해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기업 설비 조정 계획 있는 형강·강관은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등과 연계해 지원한다는 계획이며, 특히 경쟁력이 유지돼 공급과잉 여건이 양호한 것으로 전망되는 특수강·전기강판은 과감한 선제 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특수탄소강 관련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하면서 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수요 선제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열연·냉연 등 기타 공급과잉 품목들은 높은 수입재 침투율을 고려해 수입재 대응을 우선한 이후 효과를 살펴 단계적 설비 규모 조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 수입 규제 판재류, '국산 체제 전환' 본격화?
이번 법안은 최근 정부의 수입 판재류 반덤핑 정책과 연동되며 시황 개선 체감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반덤핑 조치가 실행 중인 열연·후판 시장에서는 국산 중심 공급체계가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실제 열연강판 시장은 지난해 9월 반덤핑 예비판정 이후 잠정 관세(33.6%)가 적용되며 수입 구조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산 유통 물량은 사라지고 있고 일본산 역시 가격 경쟁력 약화로 물량 감소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후판 시장은 열연보다 앞서 수입 구조 전환이 진행됐다. 중국산 탄소강·합금강 후판은 기획재정부 고시 기준 최대 34.1%의 반덤핑 관세가 확정됐다.
다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보세구역 활용, HS코드 전환, 제3국 경유 방식 등 우회 수입이 계속되고 있어 제도 취지를 췌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후판 표면에 페인트를 도포하거나 형강으로 가공해 통관한 사례도 적발된 바 있다.
업계에서 "K-스틸법의 시장 보호 조항이 반덤핑 운영체계와 적극 연계돼야 제도적 구멍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K-스틸법 제29조(철강산업의 보호 등)에 따르면 "정부는 철강산업의 보호를 위해 원산지 규정 강화와 부적합 철강재의 수입 및 유통의 억제, 불공정 무역행위 대응 등 필요한 정책을 수립·추진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전방산업 회복 속도는 여전히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건설산업은 그간의 기저효과에 따라 올해 제한적 반등이 예상되며 조선산업 역시 수주잔량이 확대됐지만 실수요 시점은 내년 이후까지 넓게 분산돼 있다.
■ 비철, 핵심광물 재자원화 위한 공급망 전략 강화
한편, 우리 정부는 핵심광물 공급망 전략을 수입 의존 구조에서 자립형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31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공급망안정화위원회에서 '핵심광물 재자원화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기술패권 경쟁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원자재 확보는 국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부각되고 있어 우리 정부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30년까지 10대 전략 광물 재자원화율 20%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미국·유럽연합(EU)·중국이 핵심광물 확보·재활용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가운데 특히 국내 시장은 반도체·전기차 등 수요 산업 경쟁력은 높지만 원료 조달 기반이 취약하고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구조다.
정부는 세계 재자원화 시장이 지난해 2,000억달러(약 285조원)에서 2040년 1조1,000억달러(약 1,572조원)까지 약 5배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시장도 지난해 6조7,000억원에서 2040년 21조1,000억원으로 3배 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정부는 38종 핵심광물 중 리튬·니켈·코발트·망간·흑연 및 희토류(네오디뮴·디스프로슘·터븀·세륨·란탄) 등 10대 전략 광물을 우선 관리 대상으로 설정하고 폐배터리·전자폐기물·폐자석·폐촉매 기반의 재자원화 생태계 육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우선 정부는 재자원화 초기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 다양한 유형의 자원순환 클러스터(배터리·반도체 등)와 기능 공간적 연계를 기반으로 재자원화 중심의 클러스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재자원화 원료 수급 안정화를 위해 핵심광물 재자원화 원료 유통실태·수급정보 등에 대한 종합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조기경보시스템(EWS)을 통해 공급망 정보를 실시간 공유·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10대 전략핵심광물부터 시스템을 먼저 우선 구축하고, 38종의 전체 핵심광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재자원화에 대한 세제 지원 확대와 규제 완화도 추진한다. 공급망 안정화에 필수적인 기술들은 국가전략기술이나 신성장원천기술에 포함해 조세특례를 제공할 계획이다.
특히 기업들의 원료 수입 부담도 낮춘다. '폐기물국가간이동법 시행령'을 개정해 순환자원으로 지정된 폐자원의 허가·신고·보증보험 등 부담 완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핵심광물을 포함하고 있는 폐기물을 수입할 때 유역환경청에 신고 하는 방식도 간소화한다. 원료의 수입 인·허가 유효기간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며 아세안(ASEAN) 국가와 수입 규제를 완화하는 별도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