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황에도 철근가공업계에 부도는 없다. 그냥 야반도주한다."
최근 철근가공장 대표 잠적 사건에 대한 가공업계의 자조 섞인 농이다. 건설경기가 역대급 침체를 이어가면서 철근가공업계도 백척간두에 섰다. 가공물량이 급감하자 영세한 사업장을 중심으로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성수기 기준 연간 철근 수요 1,000만톤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가공업계의 손을 거치는데, 올해 철근 수요는 600만톤 후반대까지 밀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가공물량 150만톤 이상이 증발한 셈이다. 내년 건설경기 역시 반등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공 시장의 한파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더욱이 철근가공업계는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과 물가 상승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가공단가로 없는 체력마저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철근가공업은 대표적인 노동집약 산업으로 인건비 경쟁이 치열한데 실제 가공단가는 대부분 기준단가를 크게 밑돌고 있다.
올해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에서 공지한 철근가공 표준단가는 건축용 기준 톤당 7만3,000원(로스율 3%)이나 시장단가는 최저가 수주에 노출되면서 여전히 5만원 중후반대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철근가공은 일반적으로 건설사가 제강사에 가공비를 포함한 턴키(일괄) 발주를 하면 제강사가 다시 가공사에 발주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제강사와 건설사를 잇는 가장 큰 다리가 철근가공업이지만 고래 싸움에 그만큼 가장 취약한 사업군이기도 한 이유다.
최근에도 A건설사가 가공단가를 표준가공단가로 권고하는 대신 로스율은 기존 3%에서 1.5%로 인하를 시도하면서 관련 업계의 비난이 거세다. 로스율이란 철근 운반, 절단 등 시공 중에 발생한 손실량을 가산해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다. 그간 철근가공업계는 임가공비 외에 3%의 로스율을 반영한 최소한의 가공단가를 적용해왔으나 건설사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관행을 흔들려는 시도란 평가다.
큰 둑은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 철근가공업은 건설 현장에서 소금과 같이 필수적인 역할이나 수요 업계의 인식은 여전히 단순 비용 절감 대상인 게 현실이다. 가공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이제라도 철근가공업이 하나의 업종으로 안착될 수 있도록 건설사와 제강사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