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제강 포항1후판의 폐쇄는 단순한 설비가동 중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990년 가동을 시작한 포항1후판은 생산과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공급과잉의 덫에서 헤쳐나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동국제강에 있어 포항1후판은 철근과 형강을 생산하는 봉형강 업체에서 판재류 업체로의 변신을 가능케 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포항1후판으로부터 시작된 동국제강의 후판사업은 브라질 제철소 프로젝트로까지 이어졌다. 그런 상징적인 설비를 불과 가동 22년 만에 폐쇄한다는 사실은 공급과잉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편이라 하겠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후판시장은 수요를 공급이 쫓아가지 못해 수입이 불가피했으며, 포스코와 동국제강의 후판가격이 수십만원 차이 나는 일물이가(一物二價) 시장이었다. 후판 주 수요처인 국내 조선업계가 ‘세계 1위’로 승승장구 할 때 가장 큰 애로사항이 후판 조달이었기 때문에 정부와 함께 철강업계에 후판 설비 증설을 종용했다.
결국, 고심 끝에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설비 증설에 나서고, 현대제철이 후판시장에 진출을 결정할 때만 하더라도 국내 후판시장의 수급불균형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곧이어 불거진 금융위기로 신조선 발주가 급감하며 조선시황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후판시장은 돌연 흑빛으로 바뀌고 만다.
후판 3사의 신규 설비는 2009~2010년에 가동을 시작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조선업체들이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던 때였다. 이때부터 후판 롤마진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최근에는 적자 상황이다. 그런데도 후판 수입이 줄지 않는다는 점은 조선사들의 자기 뱃속 채우기 행태에 심한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공급과잉에 대한 조선사와 철강업체의 시각 차이는 최근 만난 한 조선사 임원과의 대화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임원은 “조선사들은 불황을 거치면서 중장기 계획에 따라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수주전략을 재편하며 불황 탈출을 준비했다”면서 “반면에 철강업체들은 무엇을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전했다.
잘 되면 내 탓이고, 안되면 남 탓하는 조선업계에 진정한 상생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