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운형 회장 조사) 포스코 이구택 전 회장

(故 이운형 회장 조사) 포스코 이구택 전 회장

  • 철강
  • 승인 2013.03.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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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전민준 mjjeon@sn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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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고도 아름다운 사람,
사랑하고 아끼는 우리 친구, 이운형 회장!

아직은 당신을 고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녁을 같이 하자던 언약이 불과 며칠 전인데, 이렇게 당신의 영전 앞에 서야 하다니, 이 황망한 현실을 도무지 실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그 부음은 어긋나지 않아서 불현듯 영결의 시간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는 당신의 기도들이 서려 있는 정동교회입니다. 이회장, 며칠째 잠을 설치며 슬픔에 잠긴 나는 당신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떠나보낼 방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생사여일(生死如一), 회자정리(會者定離), 인명재천, 자연의 섭리,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나를 다독거려도 당신은 이렇게 가서는 안되지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내 깊은 마음을 할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안타까워하고 아까워하는 사람, 이운형 회장.
40년 철강인생의 외길을 헤쳐 나아간 당신은 드물게 뛰어난 경영인이었습니다. 활황기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불황기에 낙엽처럼 사라지는 한국 강관업계에서 유아독존으로 성장한 부산파이프가 재계 50위의 세아그룹으로 승승장구한 도정에는 늘 당신의 탁월한 예지력과 리더십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드러낼 줄도 나설 줄도 모르는 천품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세아의 장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도, 당신은 소이부답(笑而不答), 그저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었습니다.

이회장, 졸지에 당신을 떠나보내는 지금, 나는 인화와 인간존중,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세아의 무엇인가를 다시 헤아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실체는 당신의 인품과 성정, 인생관과 가치관이었을 터. 당신은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이 따뜻한 마음씨는 당신이 있는 자리마다 온기가 돌게 했고, 스스로 나서지 않는 일에도 당신을 그 중심에 서게 했습니다. 회사경영, 형제간 우애, 신앙생활, 오페라 지원 등 메세나활동, 봉사활동…, 당신의 수많은 인간관계 속으로 그 따뜻한 마음씨가 냇물처럼 조용히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을 놓아 울게 만든 친구여, 평소의 건강이 차라리 원망스러운 사람아.
무엇이 그토록 당신을 서둘러 떠나게 했는가? 미망인과 자녀들의 저 망연자실한 얼굴이 보이지 않는가? 억장이 무너지는 벗들의 슬픔을 아는가 모르는가? 세아 사람들의 저 불안한 표정이 보이지 않는가? 철강인들의 저 안타까운 눈빛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이회장. 육신이 사라진다 해서 어찌 영혼마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겠는가? 유족들의 심장 속에, 벗들의 가슴 속에, 세아의 정신 속에, 철강인들의 기억 속에 당신의 영혼은 늘 살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질고도 아름다운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순종한 사람,
오, 사랑하고 아끼는 우리 친구, 이운형 회장!

이제 우리는 당신을 떠나보낼 것입니다. 기어이 해후의 날이 오고야 말겠지만, 미리 그날을 기약할 수 없는 길로 떠나보낼 것입니다.
남은 우리가 슬픔의 힘으로 용기를 내서 영결의 문을 열면, 하나님의 손길이 아주 먼 길을 찾아온 당신의 고단한 일신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이제 곧 님의 품에 안기면 고이 눈을 감으소서. 이승의 일은 염려하지 마소서. 남은 사람들을 믿으소서. 뿌린 대로 거두리라, 하셨던 님의 그 말씀을 믿어온 사람답게 평안히 쉬십시오. 당신은 좋은 씨앗들을 뿌리고 좋은 싹들을 튼튼히 키워냈습니다. 이제 거두는 일쯤이야 남은 사람들에게 맡겨두십시오.

여보게 운형, 필생의 친구여.
젊은 시절의 푸른 꿈은 이루어져 있습니다. 도전하고 땀 흘린 시간들이 행복으로 남아 있습니다. 훌륭한 보람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이 세상엔 여전히 할 일이 많지만 당신의 삶은 마치 눈 덮인 산야의 새벽 발자국처럼 뒤에 올 사람들의 길잡이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내 슬픈 가슴에 당신의 그 발자국을 가장 소중한 우정처럼 보듬어 봅니다.





이운형 회장, 사랑하는 친구여,
벌써 그리워지는 친구여,
부디 잘 가십시오,
부디 편히 잠드소서.

2013. 3. 16 이 구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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