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스프링 제조 위해 도가니 제강법(Crucible Process) 탄생...근대 제강법 기초 이뤄
포스코경영연구원 이종민 수석연구원
인류는 언제부터 시계를 사용했을까? 최초의 시계는 기원전 4000∼3000년경 이집트에서 사용한 해시계라는 것이 정설이다. 농경사회에 진입하면서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 지표면에 막대기를 세워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을 추정했다. 하지만 해시계는 밤이나 날씨가 좋지 않은 때에는 시간을 확인하기 어려워 이후 물시계나 모래시계 등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한 인간의 욕망은 14세기 초 ‘기계시계’를 발명하게 된다. 앞에서 언급한 다른 시계들과는 달리 동력을 사용했으며 ‘중량시계(重量時計)’라고 불렸다. 1335년에는 종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최초의 공중시계(公衆時計)가 밀라노에서 제작ㆍ설치됐으며, 1348년 영국 도버성에는 시계탑이 건설되기도 했다.
1370년 프랑스의 샤를마뉴 5세는 독일인 앙리 드빅에게 이전 시계들보다 정확한 시계를 만들도록 지시했고, 앙리 드빅은 도르래에 매달린 추의 낙하를 조절하고 여기에 연결된 드럼을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켜 바늘이 시간을 가리키는 추시계를 만들었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는 목에 걸고 사용하는 휴대시계가 만들어졌으며, 이 기술은 독일 남부의 뉘른베르크에 전해졌다. 이후 이 지역 자물쇠 수리공인 페터 헨라인은 태엽(胎葉ㆍSpiral Spring)으로 작동되는 회중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모양이 달걀을 닮았다고 하여 이 회중시계를 ‘뉘른베르크의 달걀’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시계를 스스로 구동할 수 있게 하는 스프링의 사용은 시계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회중시계는 19세기가 들어 활발히 제작되면서 크기도 작아져 지금도 볼 수 있는 체인이나 스트랩이 달린 제품이 개발됐으며,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 외에도 부(富)의 과시용으로도 인기를 얻었다.
주머니에 있던 시계가 손목으로 이동한 것은 1900년대 초 1차 세계대전 전후로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전화나 통신 기술의 발전에 의해 전장에서 병사들이 정확한 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손목시계의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더 정확한 시간을 맞추기 위한 좋은 스프링의 개발 노력이 철강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1740년대 영국의 시계 제작공이던 벤저민 헌츠먼은 시계에 사용되는 스프링의 성능에 큰 불만을 가졌다. 그는 당시 시계 스프링으로 사용되던 침탄강(Blistersteel)보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철강재의 제조에 관심을 갖고 많은 시행착오 끝에 ‘도가니 제강법(Crucible Process)’을 개발한다.
도가니법에 의해 제작되는 도가니강은 기존 방식으로 제작된 강철 대비 순도, 균일성 및 재질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헌츠먼이 발명한 도가니 제강법은 전 세계 제강산업에 혁신을 가져왔고 근대 제강법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또한 도가니 제강법은 베세머, 지멘스 및 토마스 등에 의해 강의 대량 생산 프로세스가 개발되기 전까지 가장 우수한 품질의 강철을 제조할 수 있는 생산방식으로 영국을 철강 강대국으로 이끈 초석이 되기도 했다.
스위스 시계산업협회의 최근 발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기준 전세계 생산되는 시계의 55%는 철강을 주 소재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