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를 8일을 넘기고서야 불볕더위가 제 목숨을 다했다. 8월 31일 서울의 거리는 가을비의 촉촉함에 얇은 옷은 한기마저 스며들었다.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낭만의 의미를 곱씹으며 찾은 동대문구 용두동 천호대로 철강 유통·가공 거리. 도심 복판에 자리 잡고 40여 년 이상 버티며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한 터줏대감들이 생업을 위해 분주했다.

  단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이곳은 낙후지역이었다. 주로 철강 가공을 통해 생필품을 만드는 가내수공업 성격을 띠고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오는 등 다양한 가공 일감으로 점차 이 거리는 활기가 넘쳐났다. 서울에서 문래동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번창하였지만 지금은 도심 재개발 등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기계 하나를 들어놓으려고 해도 제약이 많다”는 한 철강업체 대표는 아파트 주민 등 이웃 민원 때문에 사업을 잘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면서 “최근에 생긴 아파트 입주민들이 동대문 구청에 소음 관련 민원을 제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야간작업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러한 제약으로 많은 업체가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고 있다. 과거에는 300여 개가 넘는 업체가 용두동과 신설동에 걸쳐 있었지만, 지금은 200개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어려워진 경기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늘었고, 이곳보다 여건이 나은 경기도권 유통·가공단지로 이전해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새롭게 시작하는 용기 있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하나비앤티 김병수 사장이 그 주인공. 3년 전 부도가 난 회사 자리에 창업한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질문에 “젊음이 최고 자산이자 무기가 아니겠느냐”라는 지극히 평범한 대답이 질문자를 머쓱하게 했다. 순간 ‘용기 있는 자가 미인(성공)을 얻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봉형강을 유통하는 김병수 사장은 정보의 중요성을 실감한다고 했다. “사업에 있어 거래처 발굴도 중요하지만, 거래처 관리는 더 중요하다”면서 “특히 부도소식이 제일 민감하다. 그래서 인터넷이든 종이신문이든 나온 정보를 빼놓지 않고 파악해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도는 회사의 존폐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정보를 허투루 대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여름휴가를 지나면 경기가 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이곳 업체 대표들의 얼굴은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동대문구 청계천로에 있는 백산파이프 장영석 사장은 “휴가 이후 오히려 판매가 많이 줄었다”면서 “6년 전만 해도 주변에 가공업체들이 많아 돈벌이가 괜찮았는데 지금은 가공업체도 줄고 소매도 줄어 수요 확대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이 실망으로 바뀔 때마다 이곳 대표들의 고민도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차라리 사업을 포기하면 시원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오랫동안 거래한 거래처와 의리도 중요하고, 종업원들에게 딸린 식구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업을 숙명처럼 여기기에 하늘은 이들을 절대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